나는 저번 달까지만 해도 지능검사를 단 한 번만 받았다. 자살시도로 인해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받았던 검사였다. 당시 의사는 나에게 내가 생각보다 똑똑한 편이라고 말해줘서 진짜로 그런 줄 알았다. 몇 달 후 병원에서 의무기록지를 떼었을 때, 심리평가보고서 역시 받게 되었다. 보고서에 적힌 지능지수는 103이었다. 지극히 평균적인 수치였다.

지능이 평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지능지수가 부끄러웠다. 하필 내 주변에는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다. 교수, 대학원생, 명문대생인 지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다는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이것만으로도 장애학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인데, 신경다양성을 알게 된 뒤에도 그랬으니 더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심리검사를 받은 지 4년이나 되었으니 새로 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종합심리검사(full-battery)를 받았다. 거기에는 지능검사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수행을 잘했다는 평가를 검사자에게 듣고 안도했다.

나는 내가 왜 그리도 부끄러웠을까? 한국의 지능지수 선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지능지수가 높은 연예인들을 ‘뇌섹남’, ‘뇌섹녀’(뇌가 섹시한 남자 혹은 여자)라고 부른다. 부모들은 정신의학적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자녀가 영재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능검사를 받는다. 지능검사 결과 높은 수치가 나오면 기뻐하며 영재교육을 받게 하고, 평균이면 그래도 ‘장애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다.

지적 능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선망은 지능지수만이 끝이 아니다.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대표되는 명문대에 대한 선망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같은 SKY 재학생이어도 농어촌 전형이나 기회균등 전형 출신, 수시 출신을 차별한다. 타 학부 출신 대학원생은 ‘학벌세탁’이라면서 비하한다. 무려 20여 년 전에 수능 고득점을 달성한 강성태는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하버드대를 졸업한 이준석은 여당의 대표까지 역임할 정도였다.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선망에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한국 사회는 지적 능력이 보통이거나 낮은 사람을 가열차게 비하하고 있어 문제다. ‘국평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국민 평균이 5등급’의 줄임말이다. 수능은 정규분포를 따르니 5등급이라면 지극히 평균적인 수치임에도 비하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지적장애인에 대한 비하는 더욱 심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능지처참’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잔인한 사형 방법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지적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 ‘능지(지능을 거꾸로 배치한 것)가 처참하다’라는 의미이다.

또 다른 예시로 ‘공감능력은 지능’이라는 말이 있다. 아예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까지 있다. 사실 이 책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비하하는 의도로 쓰인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비하적 의도로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능력은 지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지능이 부족하며, 고로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전제한다. 이것은 자폐성 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을 비하하는 인신공격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블루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으로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사자들을 비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능지수가 115 이상인 사람들은 15.8%에 불과하다. 고지능을 숭배하고 지적장애인을 비하하는 사회에서는 80%가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능지수를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리거나 자신의 지능지수를 부끄러워하게 된다. 잘못돼도 너무나도 잘못되었다.

한국의 지능 숭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성적이나 행복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능지수가 90점 대인 사람들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옳지 않다. 명문대에 갈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줄 뿐만 아니라, 현상의 본질인 비장애중심주의를 간과한다는 점에서 좋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대신에 지적장애인, 경계선 지능인, 자폐성 장애인, 신경다양인에게도 동등한 존엄과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능지수가 낮아도, 성적이 낮아도, 행복하지 못해도, 공감능력이 부족해도 누구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지능지수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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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회로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경다양인들은 어떻게 살까? 불행히도 등록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딱지에 가려져서, 미등록장애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다양인이 사는 신경다양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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