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 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이었던 43세의 장 도미니크 보비가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한쪽 눈의 깜박임 만으로 쓴 <잠수종과 나비> 책의 서문 중 한 문장이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되었고, 유일하게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행복을 찾았다. 왼쪽 눈꺼풀을 깜박여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의 깜박임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도대체 상상이나 가는가.

전신마비로 왼쪽 눈꺼풀만 움직이는 게 상상이 가는가. ⓒUnsplash

1994년 커다란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나 역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그래도 살 수 있었다. 만약 8m, 180kg 크기의 거대한 간판을 그대로 맞았다면, 나는 바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간판이 땅에 먼저 떨어진 후, 나를 덮쳤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비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하는 완전 다른 삶이지만, 운명의 신은 나를 살려 주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날 그날 죽게 내버려 두지, 신은 왜 나를 이렇게 고통 속에 살게 만드는지 원망도 했었다. 계속된 좌절의 상황에 지쳐 나는 그냥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반신을 못 쓰게 된 나의 상황이 너무 싫었고,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평생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 내가 살아봤자 행복하기나 할까, 심지어 내가 살아있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나는 살 수 있었다. ⓒUnsplash

그렇게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을 때, 지인이 권해준 <잠수종과 나비>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장 도미니크 보비의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장 도미니크 보비보다 신체 상황이 더 나은데 못 하고 있다는 우월 비교에서 나오는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들숨, 날숨을 쉬고, 침을 삼키는 한 살아있는 건데, 죽고 싶다고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게 부끄러웠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그의 왼쪽 눈꺼풀만으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데, 그런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아예 찾지도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운명의 신이 내가 간판을 그대로 맞게 하지 않고, 땅에 먼저 떨어지게 해서 나를 살게 한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이 나를 죽이지 않고 살게 해서 새로운 삶을 선물로 준 것은 내가 살아야 할 가치와 이유가 명백히 있는 것이다.

장 도미니크 보비가 왼쪽 눈꺼풀을 20만 번 이상 움직여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했듯,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과 행복으로 내 삶도 틀림없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였다.

막내 고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이었다. ⓒUnsplash

얼마 전, 일요일 오전에 친정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아빠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막내 고모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랐다. 막내 고모는 아직 젊고, 무척 건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고모의 사인(死因)을 듣고는 더 놀랐다.

불과 4~5일 전, 코로나19 백신을 4차 접종하고 나서부터 몸이 아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빠가 전화한 일요일 새벽에 갑자기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지면서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셨다.

아~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일일까.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을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인가 보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그동안 TV나 기사로 너무 안타깝게 봤지만, 가까운 사람 중에는 듣지 못했었다.

그런데 가족이 직접 겪으니 너무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본인조차도 너무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는 아무런 준비도 못 했을 고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고모가 이제는 편안한 곳으로 가셨길 간절히 빌었다.

욕창으로 누워서 글을 쓰지만, 살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박혜정

사람의 죽음은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내일은 혹시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살면서 한두 번은 죽을 뻔한 경험을 겪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다시 살게 된 삶이 덤이고, 얼마나 큰 선물인지 깨닫게 된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묘약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이 훨씬 소중하다는 뜻이다.

사는 게 비록 가시밭길뿐이고, 제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최고 1000도까지 끓는 화장장의 화구(火口)속 보다야 낫지 않을까. 내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살면서 대소변 실수를 하며 매일 좌절하며 살더라도 이승에서 살지, 뜨겁게 끓는 화구 속에 뛰어들지는 않고 싶다.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다는 그 이유뿐이다. ⓒUnsplash

내가 몇 번의 죽을 고비, 죽을 뻔한 일을 겪고, 다행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만약 내가 비록 하찮고 별 볼일 없이 살더라도 살아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

언젠가 목숨이 다해서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떠날 세상이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다는 그 이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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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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