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살아?”

처음에 장애를 입게 되면, 한순간에 바뀐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멀쩡하게 걸어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된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니 휠체어를 타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되어 불행한 나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졌다. 죽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휠체어를 탄다 해도, 어떤 몸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산 사람이 죽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살아 있으니 그냥 살아지는 게 또 인생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살면, 매 순간이 불행할 것 같았지만, 기쁘고 행복한 일도 많았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은 똑같이 겪는 게 인간의 삶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PxHere

“휠체어를 타고도 살아야지!”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휠체어를 타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휠체어를 타고도 살 수 있었다. 무엇이든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남들보다 힘이 더 드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못 할 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장애가 있든 없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밝고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밝고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기회가 더 주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어쨌든 살아야했다. ⓒPxHere

내가 모든 순간을 그렇게 살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밝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정말 노력했다. 김해 장유로 독립을 해서 요리, 빨래, 청소 뭐든 내가 해보려고 노력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다 할 수 있었다. 나의 단점은 끈기가 없어서 오래 일하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겁이 없고 무작정 부딪혀 보는 성격이라 이 일 저 일 많이 해봤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했던 말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뭐든 다 하는 너한테 배울 게 참 많고, 뭐든 하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 뒤, 시어머니와 아가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남편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하며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남편의 그런 말 덕분인지 시댁 식구들은 큰 반대를 하지 않았고, 나는 비교적 순조롭게 남편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남편과의 연애 시절의 모습. ⓒ박혜정

결혼이 아닌 다른 기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독립을 해서 나 혼자의 생활비는 어떻게든 벌어야 했고, 여행도 가고 싶으니 돈을 모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일해 볼래?’라고 묻는 것은 거의 모두 거절하지 않고 다 했다. 그렇게 제안하는 일자리 외에도 지역 신문과 인터넷 구인 광고를 열심히 찾아보고 꽤 많은 일을 했었다.

대학 졸업 후 전자 회사 인턴부터 광고 회사, 컴퓨터 회사 등을 거쳐 리더십 교육 회사에서 4~5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OO생명 콜센터 아웃바운딩 상담도 했었고, OO 장애인 체육회에서 사무 보조 일도 꽤 했었다. OO 도청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 전자 회사에서도 근무했었다.

그 외에도 학원 영어 강사도 제법 오랜 시간 일을 했었다. 유치부부터 중학생까지 휠체어를 타고 판서를 해가며 가르치는 게 처음에 나도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아이들의 시선도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러나 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했었다. 무엇보다 학원 원장님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긴 했다.

홈페이지 제작 프리랜서는 꾸준히 했었고, 장애인 정보화 강사 활동도 6년 정도 했었다. 온갖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다 지원해봤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이력서만 50개의 파일이 넘는다. 50군데 모두 일할 기회가 온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반 이상은 기회가 왔었다.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시절, 교육회사에서 강의하던 모습 ⓒ박혜정

이렇게 일을 하는 것도 해보려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긍정적으로 무엇이든 해보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고, 가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에게는 기회가 왔다 가도 스쳐지나가 버리거나, 기회조차도 오지 않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휠체어를 타고 살아도 괜찮아~”

처음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궂은 날씨에도 행복할 수 있고, 아무리 화장한 날이어도 우울할 수 있는 건 내 마음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북돋우며 다짐했다.

불편한 휠체어를 타고도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불행해 보이는 장애인이지만, 행복한 장애인으로 살자고 결심했다. 대소변 실수나 하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신체적인 통증에 시달리지만, 적어도 정신만은 건강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더 멋지게 살아보자! ⓒ박혜정

‘정말 휠체어를 타고 살아도 괜찮아’라고 마음을 먹었다. 높고 높은 계단 앞에서 때론 좌절하고 포기할 때도 있지만, 푸른 하늘의 내 희망과 꿈 앞에서는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더 빛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밝고 긍정적인 하고 재비가 되어 보기로 했다! 분명히 나에게 더 멋지고 행복한 일들이 계속 펼쳐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휠체어를 타고도 더 멋지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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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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