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자가 느낀 반응은 간단히 말해서 ‘이러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겐 루틴 깨지는 소리 아닌가?’라는 반응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노동시장 개혁추진 방향’에서 핵심 충돌 지점인 노동시간 정책의 전면적 개악 논란에서다. 핵심 조항은 노동시간 계산 단위를 1주일에서 1개월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이것은 문제가 있다.

다만 고용노동부의 공식 방침에 따르면, 하루 노동에 최소 11시간의 업무 금지 시간 등을 규정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인 주 52시간 노동제를 전면 파기하는 조치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규정까지 계산하면 최대 주 69시간 노동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로 계산 된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시간 정책은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자칫 루틴 깨지는 소리로 해석될 수 있다. 일정한 노동시간을 유지해야 하는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노동의 유연성을 핑계로 노동시간을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감당할 수 없는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유익하지 않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업무 상황 등을 핑계로 균일하지 않다면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상태 유지에 부적합한 상황이 발생하기 쉬워지는 문제점이 있다. 발달장애인은 계획된 시간에 맞춰지지 않았다면 큰 혼란과 위기 등 생산성 감소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일정한 노동시간에 노동해도 노동 생산성 향상에 애를 먹는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의 유연성 등을 핑계로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루틴, 즉 규칙적인 노동시간을 유지해야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노동 효율성을 유지하고 향상할 수 있다.

최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시간이 이전보다 예상보다 평균 30% 이상 더 노동하거나,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면 과로 규정을 적용하여 산업재해 판정 기준을 적용한다고 한다. 한겨레는 주 52시간 노동을 꽉 채워도 과로 위험 수준이라고 지적하였다. 한겨레 보도의 논지를 발달장애인에게 원용하면 과다한 노동시간은 발달장애인에게도 과로일 것이고, 발달장애인에게 과로를 유발하면 결국 비발달장애인에게도 그렇겠지만 생산성 손실이 크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아무리 유연하게 하더라도,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장애 특성을 존중하지 않고 무작정 오랜 시간 일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는 그 시장 특성상 더 오래 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시간을 너무 길게 잡는 것도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유익하지 않은 조치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1일 4시간~6시간 정도의 노동을 장기적으로 비발달장애인처럼 1일 8시간 원칙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월급 삭감 문제만 없다면 장기적으로 신세계그룹의 사례처럼 1일 7시간이나 요즘 일부 기업에서 유행하는 주 4.5일제 노동으로 축소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국가 수준보다 과도한 노동시간 문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노동시간 정책을 무리하게 발달장애인에게 적용하면 직장에서 정상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물 것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짧은 노동시간은 급여 문제와 비어버린 시간 활용 문제 때문에 문제점이라면,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은 생산성과 효율성 문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짧은 노동시간이 가진 적은 급여 문제와 비어버리는 시간 문제 활용 문제도 해결해야겠지만, 그것을 그렇다고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으로 해결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단기 급여는 좋을지는 몰라도, 비어버리는 시간을 넘어 모자란 시간이 생길 수는 있을 것이지만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위험한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노동시간을 줄이면 급여나 비어버린 시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으니 이것을 우리는 창조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필자가 신봉하는 개신교 종파인 성공회는 특유의 교리로 ‘중용’(Via Media)를 강조한다. 영국식 종교개혁의 산물인 이 이론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극단의 논리의 문제점을 깨닫는 동시에 본질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되찾고, 영국 특유의 현실을 중시하는 관념까지 결합하여 이 문제를 극복할 창조적인 대안으로 이러한 교리가 탄생한 것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결국 이런 ‘중용’이 필요할 것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짧은 노동시간의 문제점도, 긴 노동시간의 문제점 둘 다 양극단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이러한 ‘중용’ 원칙에 위반된다. 우리는 노동이 주는 긍정적 효과와 적절한 급여, 괜찮은 일자리, 적절한 시간의 활용 등 여러 가지 발달장애인의 노동이 주는 장점을 되찾아 긍정적인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 ‘중용’의 논리를 따라 창조적으로 발달장애인의 적합한 노동시간 배분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루 8시간일 수도, 하루 7시간일 수도, 주 4.5일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노동시간 정책 자체는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는 썩 유익하지 않다는 점만은 확실한 사실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관료들은 과거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한국에서도 일제 강점기 한국인 노동자들도 외쳤던 구호가, 그리고 세계 역사상 첫 번째 공개적인 노동운동 투쟁 구호가 8시간 노동 쟁취였다는 것을 알까? 그리고 첫 번째 공개적인 노동운동 투쟁이 19세기 말인 1886년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까? 윤석열 정부가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다가 발달장애인 노동조합이 생긴다면 과연 노동시간에 관한 구호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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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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