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기형아로 태어났지?'

한 친구가 대뜸 묻는다. 잠시 후 '유리는 기형아래요. 애자래요.'라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나는 '아니야! 아니야!' 하며 고개를 젓는다. 친구들은 내 행동을 따라 하며 더 놀려댄다. 악몽이다. 이불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괴롭힘을 당한 기억 탓에 간혹 괴로워질 때가 있다. 학교에 특수학급이 있었다면 덜 힘들었을까?

후배들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라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해본다. 학교 현황 메뉴에 들어가 특수학급이 설치되었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 상반기, 하반기, 1년에 두 번 치르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홈페이지 정보 업데이트가 안된 건지 2022년 4월 현재까지도 아쉽게도 특수학급 수는 '0' 학급에 머물러 있다.

행복했던 순간은 빨리 잊히고 힘들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 법! 대다수의 사람들은 흐릿하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초등학교 시절이 나에겐 선명한 악몽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시절 내 이름은 '바보', '애자', '기형아', '병신'중 하나였다.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입에 담기 힘든 온갖 비속어를 들으며 6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즐겁기만 했을 쉬는 시간, 체육시간, 운동회, 수련회, 수학여행 땐 두려움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친구들은 내 책상 서랍을 휴지통으로 착각했던 것인지 온갖 쓰레기가 가득했다. 체육시간에 후드티를 입고 나가면 어느새 모래가 들어찼었다. 내 후드티 모자는 친구들의 모래놀이 양동이가 되어야 했다. 자신의 집에 초대하겠다는 친구를 순순히 따라나섰다가 낯선 주차장에서 발길질을 당한 경험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에 시달렸던 탓인지 한동안 마음의 병을 앓기도 했다. 타인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등교 전 책가방을 수십 번을 들추며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다. 피의자가 될 것 같다는 강박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확인을 여러 번 해야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는 증상은 여전하다.

매일 울면서 하교를 했지만 부모님 품 말고는 안길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펑펑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나를 품에 안으시며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쓰셨다. 다음 날 나는 엄마의 편지를 담임선생님께 가져다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반 친구들에게 벌을 주셨지만 그때뿐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면 엄마도 나도 바빴다. 엄마는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며 내 상황을 알리셨다. 나는 예년과는 다른 어린이로 거듭나고자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말하기 연습을 했다. 행동을 빨리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으로 장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친구들의 따돌림은 고학년이 될수록 심해졌다.

당시에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학교 사회복지사 제도와 학교 경찰관 제도가 생기기 이전이었다. 만일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고 해도 다른 지역에는 있던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경찰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을지는 만무하다.

적어도 당시 다녔던 학교에 특수학급이라는 보호막이 있었다면 초등학교 시절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진학한 중학교에서는 특수학급 선생님의 권유로 장애판정도 받고 반 친구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즐거운 학교 생활을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학급이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따돌림을 받긴 했다. 입학 후 얼마간은 초등학교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몇몇 친구들이 수학과 영어시간에 특수학급으로 이동하는 나를 보고 수군거리며 낄낄댔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당했던 따돌림과 괴롭힘에 비하면 그깟 정도는 견딜만했다.

'너희들 작년처럼 나한테 손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 봐! 학교에 이야기해서 벌 받게 할 거야!'라는 말을 나를 놀리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입 밖으로는 꺼내지는 못했다.

배정받은 중학교에도 특수학급이 없었다면 어쩌면 초등학생 때보다 더 심한 학교폭력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당시 다녔던 중학교 특수학급은 장애학생뿐만 아니라 학습이 느린 학생들도 이용할 수 있었다. 특수학급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상담실이었으며 안식처였다.

초등학교와 달리 학교생활이 힘들 때마다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덕분인지 3년간의 중학생활을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즐거워야 할 학창 시절, 나와 같은 악몽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학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지금이라도 사립이든 공립이든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모든 초. 중. 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이 한 학급 이상 설치되었으면 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학교 사회복지사나 학교 경찰관이 한 명이상 배치되길 바라본다. 무엇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더는 따돌림을 받는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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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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