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예정인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 표지. ⓒ박혜정

나는 아무나 어떤 사람에게도 먼저 인사를 잘하는 편이다. 처음 이사 온 2013년부터 나는 엘리베이터나 현관에서 누구든 만나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상대방이 인사를 받아주든 안 받아주든 상관없이 인사를 했다. 아예 대꾸를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인사를 받아준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서로 더 밝게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 106동 3~4라인 사람들은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그게 분명히 계기가 되어서 모두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낸다. 나로 인해 꼭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겠지만, 내가 처음 이사 와서는 이렇게 인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항상 인사를 하니 시키지 않아도 우리 딸들은 어른들께 먼저 인사를 한다.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 우리 아이들은 동네 어른들의 이쁨을 많이 받게 되었다.

아파트 주민들과 무조건 인사하기. ⓒPixabay

비행기를 탈 때 휠체어를 타는 나는 제일 먼저 탑승하게 된다. 대신에 내릴 때는 휠체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에 제주도를 오가며 비행기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좌석에 앉아서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승무원들은 내리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손님들은 그 인사에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물론 밝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고개만 꾸벅하거나 내리기 바빠서 잘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 한 마디가 승무원들에게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 나아가 인사하는 나도 기분 좋아지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걸 참 모르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승무원에게 인사하기. ⓒUnsplash

​이렇게 나는 인사를 먼저 하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먼저 밝게 인사한다면,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단지 불행한 사람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밝은 인사를 하며 약간의 유머와 함께 긍정적인 말까지 한다면, 장애조차 빛나는 사람이 된다는 걸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단지 만나서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먼저 밝은 인사만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하며 약간의 유머를 곁들여 기분 좋아지는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배드민턴 라켓과 콕. ⓒPixabay

나는 휠체어 배드민턴 부산팀의 회원이다. 매주 월, 수, 금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한 체육관에서 휠체어 배드민턴 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매주 3회 저녁 시간 모두 운동하기에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일을 마치고 나면 너무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겨우 운동하러 간다.

그날도 피곤하지만 마음을 먹고 운동하러 갔다. 일을 마치고 시간이 없어서 나는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고 가게 되었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엄청나게 막히기도 하고 배가 진짜 너무 고팠다. 이대로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다가 쓰러질 판이었다.

실제 배드민턴 하던 모습(흑역사 얼굴이라 모자이크). ⓒ박혜정

그래서 체육관 근처쯤 왔을 때 내비게이션에 검색해보니 롯데리아가 있어서 갔다. 드라이브스루 지점은 아니었다. 롯데리아 옆에 공터가 있길래 일단 차를 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차를 대고 보니 롯데리아 주방 쪽 문이 있었고, 그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열린 문 사이로 직원을 불렀다. 다행히 그 직원에게 간단한 주문을 하고, 치킨너겟과 커피 한잔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직원에게 '덕분에 감사합니다! 여기 문이 안 열려 있었으면, 저 배고파 죽을 뻔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맨 첨엔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가려다가 그 말을 듣고 밝게 웃으며, '담에 배고플 때도 여기 꼭 오세요!'라고 했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먹고 더 즐겁게 운동할 수 있었다.

인사와 함께 긍정적인 말 건네기. ⓒUnsplash

나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선순환을 믿고, 너무 많이 겪은 사람 중 하나다. 인사와 긍정적인 대화로 인해 서로 웃게 되고, 좋은 인상을 받게 되니 서로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또한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자신감이 계속 생기고 당당해졌다. 선순환이 이어지니 나 스스로가 좋고 더 밝아지고 사는 게 재미있어졌다. 모든 스트레스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큰 스트레스는 없어서 약간 짜증이나 우울감이 있어도 금방 털어내는 편이다.​

그런 부분이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아이들은 아직 크는 과정이지만 정서적인 문제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해졌다. 그리고 아이들도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인과 인사, 긍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다. 나는 그게 사는 데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말은 정말 중요하다. ⓒPixabay

지난 2박 3일의 제주 여행에서 나는 리조트 직원들과 또 먼저 인사하고 몇 마디 좋은 말을 늘 했다. 그랬더니 리조트 직원들과 많이 친해졌고, 특히 리조트 편의점 아줌마와는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 제주 한 달 살기도 같은 리조트에서 하게 되었다. 리조트에 도착해서 편의점에 물을 사러 갔더니 저 끝에 계산대에 있던 아줌마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어머! 언제 오나 했어요! 드디어 왔네요~!' 내가 뻘쭘할 정도로 반겨주셨다. 우리 애들한테도 너무 잘해주시며, 맛있는 것도 많이 주셨다.​

리조트 직원들도 나를 알아보고 먼저 더 필요한 게 없는지 자꾸 물어봤다. 첫날 저녁을 해 먹기 피곤해서 치킨 배달을 시켰다. 1층에서 직접 받아야 하는 치킨 배달이 오면 방으로 가져다주겠다며 먼저 얘기를 한다. 세탁실 문제로 어려움을 얘기했더니 객실 팀장님은 자기 연락처를 주며 언제든 불편한 게 있으면 연락을 하란다.

밝게 인사하고 유머있는 긍정적인 말의 힘은 크다. ⓒUnsplash

아마도 나를 처음 봤을 땐 하반신 마비인 상태로 휠체어 타는 장애인이라 불행하게 볼 것이고, 동정심만이 가득할지 모른다. 그래서 도움을 주거나 더 베풀어 주는 게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하고 좌절에 빠져 의기소침하고 우울할 것 같은 장애인이 먼저 밝게 인사하고 유머 있게 긍정적인 좋은 말을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의외의 느낌이지만 당연히 그런 인사와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도 밝은 기운을 받게 될 것이다.

장애조차 빛나는 사람이 되자! ⓒUnsplash

분명히 처음에는 동정심이었더라도, 좋은 말과 생각의 선순환 덕분에 나의 장애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장애가 더 빛나 보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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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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