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작성하는 근로계약서를 보면 수습 기간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업무 습득력이 현저하게 낮거나 근태 등에 문제가 있는 경우 등 몇 가지 사유에 해당되면, 수습기간 이후 정식 근로계약을 하지 않고 고용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이 기간을 무사히 통과해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본격적인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독림에 대해 식구들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고 본격적으로 세대 분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부모님은 늘 “집에서 해주는 밥만 먹고 다녔으면서 어떻게 나가서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부모와 갈등이 있으니 너 혼자 나가서 네 멋대로 살겠다는 것 아니냐” 며 일관되게 독립을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때로는 걱정스럽고 때로는 극히 부정적인 마음을 비치기도 했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혼자 나가서 있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시기도 했다. 어찌되었던 격려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각오 없이 40년 이상을 살아오던 부모님 댁에서 나와 살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자립을 결심할 때부터 내 마음에 “안 되면 말고” 라는 생각은 없었다. 직장에 들어가면 수습기간이 제일 힘든 것처럼 자립생활에도 그 이상의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처음보다 서서히 익숙해질 수 있으리라 믿었고 또 그렇게 되었다.

독립 후 처음으로 마트에서 장을 보던 때다. 늘 식구들과 함께 마트를 다녔기에 그동안은 간식거리만 고르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해먹을 반찬을 그냥 고르는 것이 아닌 한 달 예산을 주 단위로 나누어 그 금액이 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구매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도 적지 않게 나왔었다.

처음에는 많이 구입해 놓고 쟁여두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수량 못지않게 유통기한을 확인했어야 했다. 유통기한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수록 쓰레기로 버리는 제품의 양도 늘어만 갔다.

그 뿐이겠는가 한동안은 가격을 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원 플러스 원이나 세일제품들을 사 두면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제품들의 유통기한이 할인을 진행하지 않는 동일한 제품에 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을 겪은 이후로는 세일 상품 구입에도 신중한 선택을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겨울에는 보일러 가동이 필수인데, 어떻게 해야 난방비를 줄이면서도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낼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했다. 보일러 제조사에 문의하여 겨울철 보일러 작동 요청을 문의해 보거나 유트브 혹은 인터넷을 활용해 보니, 보일러가 설치된 곳이 음지인지 양지인지 혹은 한파 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추운지, 보통의 날씨인지에 따라 보일러를 틀어놓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외에도 알게 된 것들은 많고, 지금도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가는 중이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에어컨을 필수로 틀어야 하는 계절이 오면, 겨울에 그랬듯, “ 여름철 에어컨 현명하게 틀어놓는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독립생활이란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한 달을 살아갈지를 배워가는 것” 이 아닐까 싶다. 생각보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시간” 은 많지 않았고, 관리비 걱정 반찬 걱정, 기타 비용 등을 고민하며 살아가느라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자립생활에 있어 수습기간 역시 잘 통과하고 느리지만 조금씩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있었다면 식품에 유통기한을 보는 법도 몰랐을 것이고, 확인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보일러 역시 추우면 틀고 더우면 전원을 내리기만 하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세상에 안 계실 때, 반 강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없다면 갈 수 있는 곳은 시설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음식과 난방에 대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항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시간만 지나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족립을 하겠다고 했지만, 처음에는 막막했고 두려웠다, 그동안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던 부모님과 고령화된 부모님을 대신해 비장애형제가 장애인인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면 ,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책을 찾아보는 것이 미래를 위해 현명한 방법인 듯 싶다.

몸이 불편한 이들의 진정한 독립은 부모님과 가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 만큼 배워가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지, 독립생활을 하는장애인은 멋대로 살지 않고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