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은 리펄스베이와 스탠리베이에 가서 바다를 보며 맛있는 햄버거와 맥주도 한 잔 하고, 여유를 즐겼다. 오후 늦게는 레이디스 마켓과 템플거리 야시장에서 홍콩의 밤거리도 느꼈다.

모든 게 새로운 곳에서 나 혼자 도전해가는 과정을 즐기고,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영어도 한 마디 제대로 못했던 나는, 홍콩에서 고작 이틀 지나니 이젠 아무런 단어나 생각나는 대로 자신감 있게 외치게도 되었다.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했다.

홍콩의 야시장에서 구경도 많이 하고 밤거리를 느꼈다. 정말 자유로웠다. ⓒ박혜정

마지막 날도 꿋꿋하게 잘 다녀보기 위해 역무원들의 도움도 받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홍콩에서 제일 유명한 도교 사원 웡따이신 템플을 갔다.

30만원을 환전해 왔는데, 알뜰하게 돈을 쓴다고 해도 남은 현금이 15달러 밖에 안 남았다. KFC를 가서 닭다리 하나랑 콜라를 먹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윙 한조각이랑 콜라 젤 작은 사이즈를 먹었다. 그러고 나니 7달러 30센트가 남았다.

웡따이신 템플에서 사원을 구경하고 소원도 빌고, 목도 마르고 배도 넘 고파서 자판기에서 6달러짜리 두유를 사먹었다. 이제 달랑 1달러 30센트 남았다. 현금을 더 남겨 놓지 않고 너무 써버렸나 후회가 되었다.

​오후가 되어서 호텔에 맡겨 놓은 짐을 찾고 마카오 공항으로 가기 위해 휠체어를 밀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한 페리 선착장에는 마카오로 간다는 문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도 알수가 없어서 음료수를 파는 가게 점원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마카오 가는 페리가 있는 곳이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어디지? 이때부터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페리 선착장을 찾아 휠체어를 밀고 밀고~. ⓒ박혜정

그 점원이 알려준 information center에서는 차이나페리 선착장으로 다시 한 30분은 휠체어를 밀고 가야 한다고 했다. 힘이 좀 빠졌지만 그래도 다시 힘을 내서 휠체어를 밀었다. 캔튼로드(canton road)를 끝까지 밀고 가니 그제서야 내가 왔던 페리 선착장이구나 알 수 있었다.

​선착장에 올라가기 전에 리바이스 매장이 보여서 들어가 보니 스탠리 마켓보다 훨씬 싸고 맘에 드는 청바지가 있어서 고민, 고민 하다가 한 개를 구입했다. 계산을 다하고 나서 짐을 챙기고 나오려는데, 내 다리 위에 얹혀있던 디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마비가 되어 감각이 없는 다리 위에서 떨어지는 줄도 몰랐던 건지, 아니면 누가 훔쳐 간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디카가 없어진 걸 발견하고는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I lost my digital camera!"를 외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 마음이 우울하고 미칠 것 같았다. 혼자 뿌듯하게 꿋꿋하게 했던 내 멋진 홍콩 여행이 모조리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울면서 리바이스 매장에 큰 짐은 맡겨 놓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침사추이 K출구부터 앞에 갔던 페리 선착장, 캔튼 로드를 정말 미친듯이 돌아보았다. 주변의 호텔 벨보이들을 붙잡고 디지털카메라 못 봤냐고도 물어보고, 경찰서나 분실물 센터를 물어보니 둘 다 좀 멀리 있다고 했다.

잃어버린 디카를 찾으러 정말 한참 도로를 헤매었다. ⓒ박혜정

한참 그렇게 찾아 헤매며 절망감에 쌓여 있는데, 물건을 파는 중동 사람인듯한 외국인이 내게 왜그러냐고 물어서 말을 했더니 포기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번쩍! 정신이 차려졌다.

이 넓은 번화가에서 경찰을 불러 본들, 분실물 센터를 찾아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었다. 하지만 정말 너무 허무하고 속이 쓰렸다. 마음을 진정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을 해보니 더 늦으면 비행기마저 놓칠 것 같아서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쩌면 작은 걸 잃고 그걸 찾으려다 더 큰걸 잃을지 모르는 일이라 눈물을 닦고 돌아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차이나페리 선착장으로 올라가니 왠지 썰렁했다. 물어보니 마카오 가는 페리가 9시에 마지막 출발을 했단다. 그때가 9시 20분이었다. 아! 디카 찾아 헤맨 시간, 리바이스 매장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부질없었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완전 힘이 쫙 빠지고 그대로 주저 앉고 싶었다. 돈도 고작 1달러 30센트 밖에 없고, MTR카드 달랑 하나랑 신용카드 말고는 없고, 선물 산다고 돈을 좀 많이 쓴 것 같아서 현금서비스 만큼은 안하려고 MTR침사추이 역으로 간 뒤, 다시 센트럴 역으로 가서 셩원으로 가려고 했다. 옆에 있던 청소부 아줌마가 극구 말리면서, 도저히 멀고 힘들어서 못 간다고 했다. 그러면 비행기도 놓친다면서. 그때가 10시 쯤이었고, 비행기 시간은 12시 55분이었다.

​마지막 날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방법을 고민해봐도 답은 없었고, 결국은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택시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택시를 타도 늦을지 모르는 판에 MTR을 타고 휠체어를 밀고 간다는 건 어리석은 짓 같았다. 4일 동안 택시도 안 타고 독하게 시리 휠체어 밀고 버스 타고 MTR타고, 먹을 것도 아꼈던 내 다짐이 쓰러지는 듯 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택시를 절대로 안타겠다고 결심한 여행이었지만, 할 수 없이 결국 홍콩 택시를 타게 되었다. ⓒ박혜정

현금 지급기에서 600달러 정도가 필요할 거라 해서 찾았다. 드디어 홍콩 택시를 탔다. 바닷길을 택시로 건너서 셩원 순탁센터에 가니 30분이 걸리고 150달러 일거라던 아줌마의 말과는 다르게 15분~20분이니 도착했고, 100달러를 달라고 했다.

10시 45분 페리를 타고 마카오 페리 선착장으로 갔다. 거기서 공항으로 또 택시를 탔는데, 40달러를 달라고 했고, 영어가 안되는 마카오 택시 운전기사는 휠체어와 짐을 택시에 싣는데 무지 짜증을 냈다. 참 나~ 나도 지금 정말 짜증나거든요, 아저씨~

​공항에 들어서니 1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게 우여곡절의 끝이 아니었다. 12시55분 에어마카오 비행기가 지연되서 2시 45분발 비행기에 탑승을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출발할 생각을 안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방송을 했다.

관제탑 사람들이 퇴근을 했다나, 정말 어이가 없었다. 5시 이후에 비행기가 뜰 수 있다고 내려야 한다고 했다. 또, 공항용 휠체어를 타니 허리가 아파서 내 휠체어를 꺼내 달라고 요청했는데, 안된다고 했다. 몇 번이나 다시 얘기하고 거의 싸우다시피 하니 정말 불친절하게 겨우 꺼내주었다.

내 휠체어를 타고도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상태로 거의 7시간을 정말 힘들게 있었다. 내가 다시는 에어마카오 안 탄다! 드디어 6시 45분에 출발한다고 방송이 나왔다. 이젠 제대로 출발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혼자 너무 힘들었지만 많은 걸 얻었던 젊은 날의 홍콩 여행. ⓒ박혜정

휠체어를 타고 중증장애인인 여자 혼자, 처음으로 했던 홍콩 여행, 정말 힘들었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거지 취급을 받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이 가득한 채로 휠체어를 그렇게 많이 밀어본 것도 처음이었고, 너무 힘들었다. 영어로 소통이 안 되서 역무원과 손짓 발짓해가며 난감한 일도 많았다. 게다가 마지막 날은 여행의 모든 것이 담겨 있던 소중한 디카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으로 나는 얻은 게 훨씬 많다. 20대 중반, 엄청 방황하던 시절의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내가 다시 나아가야 할 길을 찾게 되었다. 또, 휠체어를 타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분명히 얻게 되었다. 그 확신과 자신감으로 나는 더욱 힘차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 이 첫 도전의 홍콩 여행 덕에 지금의 행복한 내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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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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