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얼마 안되었을 때는 휠체어를 타는 내 모습도 부끄러웠고, 배가 나온 내 모습도, 대소변 실수를 하는 내 모습이 다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나서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지만,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고, 숨기려고만 하니까 모든 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숨기는 데 급급하고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포장된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결국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건 나 자신이었다.

​맨 처음 OO대학교에서 일을 시작하고 엉덩이 욕창이나 대소변 실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타인이 절대 이해하지 못할거라 지레 겁을 먹은 것도 있었고, 나의 그런 치부를 직장 동료에게 보이기 부끄러웠고, 오히려 내가 더 그런 부분을 보이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척수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나의 의지대로는 안되는 몸의 상황이 생겼을 때, 화장실 뒤처리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시간도 눈치가 너무 보였고, 괜히 나한테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무실에 같이 있지만, 외딴 섬에 나 홀로 있는 듯, 매일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다.

나혼자 힘든, 외딴 섬에 있는 느낌의 나. ⓒ박혜정

사실 너무 힘들었다. 힘들어서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고민하다가 그냥 속시원하게 다 얘기해버리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 때 당시 마침 직속 팀장님이 배려가 깊은 여자 팀장님이셨고, 그 분께 상담을 요청했다. 내 상황을 장문의 글로 써서 팀장님께 먼저 메일로 보냈고, 만나서는 조금 더 내가 힘든 부분을 이야기했다.

아직도 고마움이 많이 드는 그 팀장님은 진심으로 나의 상황을 공감해 주셨다. 욕창과 자세 변환을 할 수 있도록 침대가 있는 여직원 휴게실을 마련해 주시고, 화장실을 가서 뒤처리 하는 시간에 대해서도 다른 직원들에게 대신 양해를 구해 주셨다. 그 뒤로는 나의 마음도 너무 편해졌고, 크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도 거의 없게 되었다.

여직원 휴게실 모습 ⓒ박혜정

그런 일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나는 부끄러움이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나의 약점, 치부 등 부끄러운 면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했을 때,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 않은 누군가도 있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인성이 별로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린다. 신체적 장애로 인한 불가피한 실수 뿐만 아니라, 내 일상 생활에서 감추고 싶은 일이 있어도 주변의 진정한 내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진정한 내 사람들은 분명히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위로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 한, 내가 부끄러워할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해지고 당당해지자, 나는 마음이 더 평화로워졌고 정말 편안한 심리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부끄러워 숨기는 것 보다,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멋진 태도이며, 나의 정신 건강에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지금 숨어 있다면,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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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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