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여 년 전인 2001년 , 따스했던 봄 햇볕이 따갑게 느껴지는 여름 즈음이었다. 매미가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맴맴맴 하고 하염없이 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요즘 들어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낼 것만 같은 엄마의 그렁그렁한 눈빛처럼!

엄마는 중학생이던 내 손에 카드 한 장을 쥐어 주셨다. 엄마는 이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 용돈을 늘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 사진과 이름 석자가 또렷이 새겨진 카드,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나에게 벌써 주민등록증이 나왔을 일은 없고 대체 어디에 쓰이는 카드일까? 나에게 왜 카드가 생긴 걸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다. 요 며칠 사이 엄마는 맴맴맴 우는 한여름의 매미처럼 슬퍼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드를 가지고 다닌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교무실은 사고 친 아이들만 불려 가는 곳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파르르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다른 게 아니라"라는 말을 먼저 꺼내시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앞으로는 학비를 안 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왜요?" 라며 선생님에게 이유를 여쭤보려고 했지만 다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내 질문을 가로막으려는 듯, 땡땡땡하고 울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교실로 걸음을 재촉하면서 떨리는 교무실행을 함께 해 준 친구에게 물었다.

"너도 학비 안내도 되니?"

"아니"

"근데 왜 나만 학비 안내도 된다는 거지? 혹시 너는 아니?"

"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께도 친구에게도 속 시원한 답변을 받지 못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추리력이 100단에 가까운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 당시 즐겨봤던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으로 빙의하여 추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며칠 전에 엄마로부터 건네받은 카드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어디 학비 면제뿐이던가? 지하철 매표소 역무원에게 카드를 보여 주면 지하철 승차권을 돈 안 내고 그냥 받을 수 있었다. 공짜로 지하철도 탈 수 있고 학비도 안내도 되는 일명 프리패스 카드였다.

덕분에 용돈이 늘었다. 돈을 내지 않고 카드를 역무원에게 보여 주고 승차권을 그냥 받아가는데 명탐정 코난이 뒤쫓는 악당이 된 기분이 들었다. 계다가 하굣길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승차권 색상이 달랐다. 그러나 창피함은 단 며칠뿐, 용돈을 더 받을 수 있다면야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좋았다.

당시만 해도 나에게 만능 카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늘어난 용돈으로 친구들과 떡볶이도 사 먹고 노래방도 다녔던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카드를 나만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또다시 코난이 되어 추리를 시작하니 얼추 답이 나왔다. '두 달 전쯤에 병원에 다녀왔다.' , '병원에 다녀온 지 두 달 뒤 엄마에게서 카드를 받았다.' 이 둘은 연관성이 아주 깊다... 하지만 그 카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뭐래도 상관없었다. 덕분에 부모님께 받는 용돈이 늘었고 친구들과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에 다녀온 이후 중학생이던 나에게 프리패스 카드 한 장이 생겼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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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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