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부터 위장벽까지 거의 모든 점막이 헐어 있었다. 붉게 핏빛으로 물든 점막은 보기 흉할 정도였다. 그렇게 금식이 시작되고 뱃줄도 하지 않으니 또 링거에만 의지한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하루가 다르게 영양 상태가 악화되었고 어지럼증을 동반한 온갖 고통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아파하면서 누워서 몇일이고 버텼다. 피부질환도 심해져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고 얼굴은 부은 곰보처럼 되어버렸다. 얼굴이 항상 불에 대인것처럼 화끈 거렸고, 병원에서 추천하는 여러 제품들을 써봤지만 다 소용없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기로 참은지 일주일쯤 지나고, 스테로이드 없이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한다는 강남에 모한의원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비법약을 먹으면 된다는 누가 봐도 의심가는 소리였고, 금액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무슨 기를 보고 호흡법을 가르치고 이상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전화 넘어도 기를 본다고 하고 호흡이 머리에 혈을 지나야한다면서 호흡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한의원에서 자랑하는 비법약을 병원 몰래 들여와 먹기 시작했다.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한의원장 말로는 그 약은 스테로이드 성분도 항염제 성분도 없고 식도에 상처에 닿아도 무해하고 혹시 구멍으로 빠져들어가도 염증을 유발시키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차피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약값은 터무니 없이 비싸, 아무리 생각해도 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살든 죽든 일단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는 말에 휘둘려서 온 힘을 다해 한 모금, 두 모금, 먹어나갔다.

고통이 줄고 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상황이었기에 그 오기로 매일을 참으면서 버텼다. 놀랍게도 식도에 천공이 메워졌다. 다시 음식을 조금씩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내 고통은 전혀 줄지 않았지만, 의사들이나 부모님 모두 기뻐하셨다. 내가 욕심이 컸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것이 너무 괴롭기만 하였다.

그래도 일말의 성취가 있기에 무작정 사기꾼이라고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여전한 어지럼증과 피부염, 불면 등에 고통 받으며, 이제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약에 의지한 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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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섭 칼럼니스트 2010년 희귀난치성 질환 류마티스성 피부근염에 걸려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을 오직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다. 2020년 삶의 귀인을 만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써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써, 근육병 환자로써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를 전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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