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에티켓 교육 일부 발췌. ⓒ한지혜

늦은 시간 한 시각장애인 여성이 제과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가 첫 번째 찾고자 하는 제품은 식빵이었다. 찾는 식빵을 점원에게 여쭈자 품절 되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다음으로 구매하고자 했던 제품은 피자빵. 다시 점원에게 위치를 물어본다. 점원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답한다. “저기 있네요.”

엉뚱한 곳에서 허우적거리는 손님을 보고 다시 고지해 준다. “저기 철판 쪽으로 가보세요.”

손님은 방향을 틀어 잔존시력으로 겨우 보물찾기 게임이라도 하듯 피자빵을 손에 든다. 다음은 마카롱이다. 그리 친절하지 못하였던 점원에게 괜히 민폐라도 끼치는 듯 조심스레 손님은 또 물어본다.

손님 : “저기 마카롱은 어디 있나요?”

점원 : “바로 앞에 있네요.”

손님 : “바로 앞 어디쯤요?”

점원 : “돌아서면 바로 앞에요.”

손님은 자신의 불편에 대해 점원이 인지를 정확히 못한 것 같아 알려 준다.

손님 : “제가 저시력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점원은 더 언성을 높여 같은 말을 반복한다.

점원 : “그래서 바로 앞에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점원의 행동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있었던 손님은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다.

손님 : “선생님 눈 감아보세요! 눈감고 뒤돌아 바로 앞이라고 말하면 본인은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나요?”

점원은 더욱더 짜증스럽고 귀찮다는 어투로 대응한다.

점원 : “그래서 딱 바로 앞이라고 말했지 않나요?

손님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못 참을 것 같은 감정은 이대로 변함없이 앞으로도 장애인 손님들을 응대할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이었다.

손님 : “어떻게 기본적으로 공감해 보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으세요?”

점원 : “전 분명 설명드렸구요. 손님 마스크나 똑바로 쓰시죠?”

이렇게 MZ세대의 확고한 자기 논리와 당당함을 대표하는 직원과 장애로 인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는 단연코 대변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손님의 기 싸움은 늦은 밤 적막함 속에 더욱 팽배해졌다.

손님 : “마스크요? 선생님이 친절하게 안내만 해주셔도 저는 여느 평범한 고객처럼 벌써 문을 나섰을 건데, 선생님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말을 하다 보니 약간 마스크가 흘러내렸네요.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소임을 다 하셨다고 하니 더 이상 언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행하시게 될 응대 자세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저는 본사에 객관적인 판단을 여쭈겠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이 어떤 부분들이 미흡하였는지 꼭 숙지 시켜 드릴게요.”

침묵과 적막 속에 포장과 계산은 이루어졌고 나가려는 찰나에 점원이 손님을 부른다.

점원 :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제가 결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시험 기간이고 마감을 앞둔 시간이라 제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손님 : “뒤늦게라도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저 또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네요. 저도 함께 언성을 높인 점은 사과할게요.”

다시 서로에 대해 신뢰감을 회복한 둘은 양은냄비처럼 금방 식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을 찾는다. 그리고 손님의 권유로 시각장애인 고객이 방문하였을 때의 응대 방법을 다시한번 익혀 보기로 했다.

점원은 안내부터 시작하여 마카롱의 종류와 특징들 그리고 제품별 가격까지 너무 상세하게 잘 설명해 주었다. 결국 점원은 응대할 줄 몰라서가 아니었고 그 당시 귀찮았고 무관심해서 예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몸이 불편한 고객이 오면 좀 더 배려하고 더욱 친절하겠노라고 자발적인 약속도 손님에게 전했다.

그렇게 대립 관계를 조성한 그 장소는 자연스레 속성 1:1 맞춤형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고 두 여성 모두를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사례에 등장하는 손님은 사실 다름 아닌 필자였다.

누군가와 언쟁한 것이 뭐 큰 자랑이라고 기고에까지 오르내릴 사안이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장애인이라면 유형과 사례가 다를 뿐 상황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전에 장애이해교실을 나갔을 때 수업이 끝난 후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다가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 그동안 장애인에 대해 잘못 생각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요.”

고작 아홉 살 마음에서 뿜어낸 소해일 뿐인데 어떤 감상평보다도 진정성 있게 가슴을 울렸다. 우리 사는 사회에는 올바른 장애상을 갖지 못하고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인정하기 싫지만 얼마나 많은가? 장애인에 대해 알려고 하는 용기, 공감하고자 하는 그 열의만 선행되어도 벌써 실천의 반은 행한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비록 필자는 법학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항상 장애인으로 사는 삶 속에서 지표로 삼는 법 조항 문구가 있다. 바로 헌법 제 10조에 명기된 문항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그렇듯 법안에서 공평한 삶을 누려야 할 권리를 지닌다.

사실 그날 밤 제과점에서 조금 많이 불친절하고 의식이 부족한 점원을 만났다고 여기고 나왔다면 나의 에너지도 소진되지 않았을 것이고 점원도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고 이해하고 잊어버리며 그 상황들을 넘기는 사이 우리의 인권은 또 소리 없는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언쟁은 있었지만, 필자에게는 장애를 배려해 주는 든든한 이웃 주민이 생겼고 점원은 섬세함과 배려의 성품을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신체적 불편이 있다고 하여 삶의 가치가 차등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누구도 장애를 뜻한 바에 의해 겪고 있는 이들도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당당해져야 함이 마땅하다.

부당한 상황에서 묵인하고 참는 것은 그 순간 불편한 감정을 회피할 수는 있으나 추후 변화되지 않는 세상과 씨름해야 하는 힘겨움을 과중시킬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장애를 겪게 됨과 동시에 각자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가의 임무를 함께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존중할 때 비로소 세상도 우리를 존중해 줄 것이고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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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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