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과 장애인 당사자는 처음에는 전문가에게 ‘제발 고쳐 주세요.“하면서 만난다. 그러다가 저 분이 정말 나를 살려줄 사람인가, 최고의 기술자인가를 의심한다. 다음으로는 다른 방법도 있는데 왜 이 방법을 사용하느냐, 나도 알만큼은 안다. 혹 보건의료인이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특별히 보살펴 주지 않고 단지 업무처리로 환자취급만 하는 것은 아닌가? 등등 불만이 쌓이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장애학에서 말하는 의료인도 재활전문가처럼 전문가로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전문가가 당사자의 감수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거나,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지 않거나, 당사자를 단지 대상화하거나 객체로서만 다루어 주체성을 무시하지는 않는가 비판하면서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보건의료인을 택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가 되면 ‘보건의료인들은 전문가의 영역인데...’라든가, 전문가의 도움 없이 당사자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왜 보건의료인을 배척하고 당사자들이 나서는 것인가 등등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게 된다. 사무적 태도와 무성의한 보건의료인과 별난 당사자가 만나면 그들 사이는 최악이 된다.

장애인의 심리를 이해한다면 장애를 가지게 되는 시기에 쇼크(충격) 상태가 되고,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는가 화가 난 상태이고, 장애가 짜증나고 모든 것이 원망스럽게 되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우울증에 빠지는 당사자들을 어떻게 안정시켜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당사자의 심리는 있는데, 보건의료인을 이해해줄 심리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알아달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서비스 공급자와 이용자의 입장이 이런 것이다. 당사자를 대하는 진정성이나 같이 고민하거나 친절한 설명, 업무보다는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대하기 등은 관계형성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국가로부터 권리를 찾아 서비스를 확충하고자 하는 당사자와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보건의료인들이 서로 힘을 보태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는 당사자와 보건의료인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보건의료집단과 당사자단체의 집단적 관계의 상호 협력과 이익창출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동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법은 통과되고 어느 정도의 과실은 얻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법에서 규정하여 얻고자 한 것들이 제대로 달성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치의 제도는 개인부담금을 별도로 당사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과 어떻게 자신에게 맞는 주치의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없고 충분한 시범사업의 예산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주치의에게 자문을 받듯이 필요한 도움만 받고 모든 결정은 당사자가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인 대가와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은 보건의료인은 간데없고, 국가의 건강관리 시스템으로서 제도만 껍데기로 남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보건의료센터를 충분히 확충할 것인지, 지역사회의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하여 의료기관의 부담이 아닌 국가의 지원을 충분히 이끌어내지도 못했고, 어느 것이 우선인지 합의를 하지도 못했다.

여성장애인이나 장애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서비스를 개발하지도 못했고, 특히 재활운동의 보험적용이나 전문가와 서비스 기관 등의 명확한 제도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장애인의 원격진료를 통한 접근성을 향상시킨 것도 아니고, 언어, 청각, 물리치료, 심리치료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보장된 제도나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니다. 보건의료 전문가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재활전문가와 의료인 간의 독립성 확보에 대한 갈등도 보일 수 있는 문제도 그대로 갖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여 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인식개선 교육을 하는 것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의료인들이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건강교육을 정례화한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하여 어느 지자체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지 못하고 있다.

건강관리 종합계획에 모든 전문가 유형과 당사자 유형이 만족할 수 있는 의견을 담아 상호 만족할 수 있도록 심의하거나 토론해 보지도 못했고, 한자리에 모여 계획수립의 공동작업을 하지도 못했다.

장애인의 건강보건 연구를 위해 충분한 연구 예산을 마련하거나 연구의 시급성을 감안하여 장기 연구 계획을 수립한 것도 아니고, 건강검진이나 건강관리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져 비장애인과 건강검진률이 동등해진 것도 아니고, 후유증이나 속발성에 대하여 확실하게 기댈 언덕이 생긴 것도 아니다.

건강통계는 미진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자료가 형성된 것 같은데, 건강 정보가 당사자에게 충분히 제공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장애인의 의료비 지원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보장구 지원이 현실화된 것도 아니다.

법의 시행 시기는 이미 지났지만 그것들을 준비하고 환경을 만드는 것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보건의료 전문가와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에는 아직도 안개 속이다. 법은 지켜야 할 보장이 아니라 이상적 희망 사항을 모아놓은 자료집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협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의 각도를 달리해보면 그러기에 더욱 협회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환경 구축은 당사자를 위한 것이니 당사자 단체는 힘을 보태는 것이 당연하니 협회에서 활동을 통해 지지세력으로 참여해 달라고 하면 당사자들은 전문가 이익을 위해 들러리를 서 달라는 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당사자를 품고 가려면 당사자의 사업 분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문가 교육에 당사자의 참여를 시킨다거나, 건강교육에서 운영 주체는 당사자단 체가 맡고 강사 제공은 전문가 집단에서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건강연구에서도 당사자들이 충분히 참여할 수 있고, 어떤 결정에서도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다. 당사자들이 건강권 확보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전문가들에게 이익만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공동의 목표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접근성은 보건의료인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 전문인들이 당사자의 지지자가 되어 먼저 편의시설과 의료장비, 의료정보의 접근성 확보를 위한 운동을 펼쳐준다면 당사자들은 세상이 바뀌었다고 믿을 것이고, 적극 참여를 해야 하는 동기를 가질 것이다. 보건의료 전문인들이 무엇인가 얻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당사자와 보건의료인은 한 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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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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