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표지. ⓒ을유문화사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라는 책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 어맨다 레덕은 뇌성마비 장애인 여류 작가다.

이 책은 에세이 형태로 되어 있으나 장애학 문화비평서이다.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이 아닐 뿐, 주와 참고문헌이 붙어 있고, 동화에 대한 비평에 장애 당사자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붙여 당사자성과 주체성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장애학 관점에서 사회와 동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학은 장애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아니라 주체가 되는 연구이므로, 자신의 이야기만큼 주체성을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감수성 높은 자신의 이야기를 더함으로써 장애인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진다.

소재는 동화 속의 장애다. 동화는 이야기라는 재미를 통해 다름을 알게 하고, 정의를 알게 하고, 올바른 정서와 가치관을 갖게 하며, 꿈을 가지게 한다. 다름은 단어들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사물과 행동의 교육에도 사용되는 도구이다. 아이들 학습교재에서 같은 것 찾기와 다른 것 찾기가 문제출제 형식이며, 성인들의 각종 시험에서도 ‘다른 것은?’이란 질문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화는 장애 비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다름을 신체의 장애로 표현되고, 마법에 의해 장애가 발생하거나 제거되며, 장애가 악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정하는 것에 장애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동화가 장애 비하의 온상이 된 것은 장애는 다름에 불과한 것인데, 다름의 이유를 마법에 걸린 것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동화는 어려운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또 다른 능력을 보여 결국 행복을 쟁취한다.

그림형제의 ‘고슴도치 한스’에서는 아이가 없던 농부가 고슴도치라도 낳고 싶다고 하자, 상체가 고슴도치인 한스가 태어난다. 한스는 부모가 숨겨 키우고 있었으나 한스는 목동이 되어 성공하고 길 잃은 왕에게 길을 가르쳐주면서 공주를 얻는 약속을 받는다. 왕은 이 약속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자, 공주를 폭행하고 헤어진 후, 또 다른 길 잃은 왕을 만나 공주를 얻어 행복하게 된다. 한스는 고슴도치는 거죽일 뿐이라며 불태워 온전한 인간이 된다. 우리 동화 ‘반쪽이’ 이야기와 유사하다.

작가는 동화 속에서 행복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 시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적 성공만 있을 뿐, 세상을 바꾸는 결말이 없음을 지적한다. 의료모형이 아니라 사회모형으로 장애의 귀환을 포용하는 사회구조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는 피해야 하는 존재이고, 선과 악, 불행과 행복, 외모주의의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다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시버스는 ‘장애이론’에서 ‘콤플렉스 구현’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장애와 비장애란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는 것, 장애에서 비장애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음에도 행복으로 넘어가는 사회모형이 제시된다.

그림형제의 ‘손을 잃은 아가씨“에서는 방앗간 주인에게 방앗간 뒤에 있는 것을 주면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말에 사과나무인 줄 알고 약속했는데, 뒤에 놀고 있는 것은 딸이었다. 악마는 정화하는 물에 접근할 수 없어 딸이 물을 이용하자, 딸의 손을 자르라고 한다. 손이 잘린 딸이 눈물을 흘리자 눈물의 정화로 악마는 딸을 데려가지 못한다.

딸은 천사가 데려다 준 왕의 정원에서 과일을 먹었는데, 이로 인해 왕비가 되지만, 왕이 전쟁터로 떠난 사이 악마가 나타나 전령이 되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바뀐 아이를 낳았다고 거짓말을 전한다. 바뀐 아이는 장애아를 말한다. 과거 사람들은 자폐성 장애아를 요정의 아이라고 믿었다. 왕은 아이를 죽이라고 전하였으나, 아이를 데리고 도망하여 방황하다가 다시 왕을 만나 행복해지고, 기도로서 팔은 다시 자라난다.

작가는 ‘자선 모형’은 장애를 불행이나 약함으로 보므로 문제가 있으며, 장애 극복은 감동 프로노로 장애를 ‘부족’으로 여겨 극복을 오히려 대단한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도가머리 리케’에서는 지적 장애를 가진 귀족 마마가 지하 못생긴 난쟁이 왕 리케에게 똑똑해지게 해 주면 결혼해 주겠다고 하여 똑똑해졌는데, 사랑하는 아라다를 못 잊어하자, 리케가 아라다로 변장하여 마마는 아라다와 리케를 구분하지 못하고 두 남자와 살아간다. 다른 책에서는 마마가 요정의 마법의 도움으로 리케를 아름다운 남자로 변하게 만든다.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결핍-걸핍-결핍 제거 패턴이다. 하지만 결핍 상태에 있는 장애인은 따돌림의 대상으로 아이들의 눈에 비칠 것이다.

‘개구리 왕자’에서 동물로 표현한 것은 특징을 말하거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동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지만,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결말에서 찾는다는 이야기는 동물의 은유는 결국 장애로 상징되고 만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심장이 없고, 뇌가 없고, 용기가 없는 세 사람이 완전한 몸이 되고자 여행을 떠난다. 이들도 장애인이다.

백설공주, 알라딘, 인어공주, 생쥐 구조대,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등에서 모두 부모를 잃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고, 라이온 킹의 악당 스카는 고유한 이름을 갖지 못하고 ‘흉터’라는 의미의 낙인이 이름이 된다. 영웅이 있고 악당이 있어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것이 동화이기도 하지만, 영혼을 얻고자 각오해야 하는 위험과 심청이 아버지의 공양미처럼 잘못된 약속을 해 버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네메시스는 분배와 정의의 개념보다 천벌, 인과응보로 해석된다.

저주의 마법으로 장애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것과 공주처럼 우아하지 않아도 되는 동화는 없다. 동화 속에는 정략결혼을 지켜야 한다는 시대적 교훈이 들어 있고, 후에 알고 보니 왕자였다는 것이 인식이 개선되어 참된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미운 오리 새끼’가 참고 견디어 정체성을 찾았다고 보기에는 가치의 기준이 통속적이다. 작가는 2018년 영국에서 벌어진 체인징 페이시스 운동을 소개한다. 장애를 흉악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을 바꾸자는 운동이다. 결국 영화협회에서는 흉터가 악당으로 표현되는 작품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소개하면서 용의자가 작고 땅딸막하여 왕따를 당했고, 그래서 비디오 게임에 심취하여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총기를 난사했다는 기사를 소개하면서 추함은 나쁘고 예쁨은 좋다는 이분법식 짜맞추기, 즉 그는 추했고 괴롭힘을 당했으며, 그래서 악당이 되었다는 공식이 창조된 진짜가 되는 사회라고 꼬집는다. 우리는 장애인이 소풍을 가면 장애를 극복하고 소풍을 갔다고 뉴스 기사가 나온다. 소풍 갔다 온 사람 중에 극복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푼첼’에서는 임산부가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녀의 밭에서 양배추를 훔치다가 들켜 첫아이를 주기로 한 것에서 고난이 시작된다. 라푼첼은 왕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마녀가 왕자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든다. 라푼첼의 눈물이 왕자의 눈에 들어가 치유가 된다. 심청전에서처럼 눈을 뜨는 이야기다.

마음의 눈을 뜨는 상징으로 보아야 할까? 눈을 감고도 행복하게 살도록 해야 할까? 마법이 아닌 사랑 또는 교육, 기술이 눈을 뜨게 해야 할까? 편의시설과 인식 개선으로 오히려 사회가 눈을 뜨게 해야 할까?

‘해와 달과 탈리아’에서는 왕이 여인을 범한 것이 여인에게 축복을 준 것으로 묘사되고, 잠을 재우는 마법은 기면증(클라인레빈 증후군, 잠자는 숲속의 공주증후군)에 편견을 안긴다. 작가는 과거 미개한 사회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이야기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장애)을 위해 이야기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적 장애나 젠더 등도 동화에서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디즈니 공주 15명이 정신질환을 모두 갖고 있고, 왕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구조가 말이 안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바뀌었다고 믿는 카그라 증후군이 장애 살해나 학대를 정당화하고, 이런 것들이 동화에서 내면화될 때 사회는 심각해진다. 벨 미디어 회사에서 벌인 벨 말하기 캠페인은 정신장애에 대해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기부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게 맡긴 결과를 낳았다는 점과 벨 회사 직원이 정신장애를 갖고 있음을 고백하자 해고한 것을 작가는 예로 들면서 동화의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사람들은 동화 필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데, 왕가에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신들이 동전을 던져 장애아를 만들지를 정한다는 ‘왕좌의 게임’이야기는 정신자애가 광기로 분출된다는 흥미위주로만 처리되고 말았다. 다모증 서커스처럼 장애가 경이와 흥미로 취급되는 데에는 차별과 배제가 깔려 있다. 능력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다.

단편 소설 ‘피로 물든 방’은 후작이 세 번째 결혼을 한 후 전쟁터에 가면서 열쇠 꾸러미를 주면서 한 방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결국 부인은 호기심에 금기의 문을 열었고, 그 방에는 두 명의 전 부인들의 사체가 있었다. 이때 남편이 돌아와 아내를 죽이려 하자, 어머니가 나타나 후작을 죽인다. 재산을 맹학교에 기부하고 평소 의지하던 시각장애인 피아노조율사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시련을 선행으로 마무리한다. 영화 ‘마블 캡틴’에서는 혈청으로 다른 인간으로 변하는 슈퍼히어로 장애인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으로 똥꼬에 피클을 넣었다고 놀림을 받은 작가는 ‘내가 세상에 증명할 것은 없다.’, ‘세상이 내 걸음을 위한 자리를 만들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동화 결말에서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실재로는 어떻게 얻어야 할까? 저자는 성노동을 위해서도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팟케스터를 소개하면서 다양한 욕구가 다루어짐을 말한다. 비장애인중심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애인이라도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기에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미국에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거나 트위터에 활동을 하여 후원을 받는 장애인은 수급자에서 탈락시켜 가짜 장애인을 색출한다고 한 사례나, 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1달러를 덜 주도록 규정한 과거 법을 예로 들면서, 동정도 피해자도 아닌 장애인의 그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사회, 차별과 편견이 없는 사회 속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기에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어공주’는 걸을 수 있는 다리를 갖고 싶었고, 완전한 몸이 되려면 자신이 생명의 은인임조차 모르는 사랑하는 왕자를 죽여야 했다. 얻은 다리로 걸을 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고, 재투성이란 의미의 신데렐라는 언니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언니들은 모두 성격이 나쁘고 등등의 동화는 왼손잡이가 악마에게서 왔다고 여겨 처형한 시대가 있었듯이 장애인에게는 해방시켜야 할 사회인 것이다.

김소정 역자에게 생물학을 전공한 자로서, 다양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떻게 장애학 관련 서적을 번역하게 되었느냐고 질문하자, 주위에 다양하고 많은 장애인들이 살고 있음에도 자신이 너무나 장애에 대해 몰랐다는 것을 번역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번역하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번역한 것이라기에는 너무나 장애이슈를 정확히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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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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