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방식과 속도는 매우 다양하다. ⓒunsplash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까치발을 하고는 파프리카를 고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이는 자신의 손보다 훨씬 큰, 먹음직스런 빨간색 파프리카를 하나 고르더니 "엄마, 이거!" 하며 장애인 보조견과 함께 서 있는 엄마의 손에 쥐어 준다. "좋아, 그 다음으로는 당근 세 개…" 엄마의 말이 떨이지기도 무섭게 아이는 후다닥 달려가더니 당근을 고르기 시작한다. 이때, 지나가던 할머니가 엄마에게 묻는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럴 때 보조서비스 안 받아요?"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할머니가 말한 '이럴 때'가 '장볼 때'를 의미하는지 '시각장애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를 의미하는지 순간 헷갈렸다. 할머니의 속뜻이 "부모가 어린 아이를 왜 이렇게 고생시켜요?"라며 엄마를 질책하는 건지, "마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나요?"라며 마트를, 나아가 국가를 비판하는 건지도 헷갈렸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이 순간, 아이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독일에는 장애가 있는 부모를 위한 다양한 보조서비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청(Sozialamt)이 사회통합부조(Eingliederungshilfe) 차원에서 지원하는 서비스로, 부모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자녀양육에 제약을 받는 사항들을 작성하여 신청하면 된다. 가족이나 친척 등 장애부모가 원하는 사람들 모두 보조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독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모보조서비스를 시행했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비로소 2018년부터 부모보조서비스가 사회법전 제9권에 법제화됨으로써, 장애부모는 사회참여를 위해 부모보조서비스를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부모를 위한 보조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부모지원서비스(Elternassistenz)로 주로 신체 및 감각 장애가 있는 부모가 자녀 양육을 스스로 계획하고 조절할 수는 있으나, 장애로 인해 타인의 지원을 통해서만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경우다.

두 번째는 부모동행서비스(Begleitete Elternschaft)로 주로 지적 및 심리적 장애가 있는 부모가 자녀의 기본욕구를 지각하고 충족시키는 데 있어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다. 이때 일반 보조인 외에도 교육자, 사회복지사 등이 협력하여 부모를 집중 상담지도하며 동행한다.

2살 아들을 홀로 양육하는 중증지체장애인 사라는 전적으로 휠체어에 의존하고 한부모가정이라는 특성상 자녀양육에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사라는 현재 총 8명의 보조인을 고용하여 하루 24시간 육아 지원을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중증시각장애가 있는 한나와 남편은 5살 딸을 키우며 일주일에 2~3회 정도만 부모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나와 남편은 웬만하면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 생활을 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아오고, 그러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들 가족은 수영장이나 대형마트, 대형놀이터 같이 사람들로 북적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타인의 도움 없이 거의 모든 일을 해낸다. 셋이서 기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는 일도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결국 장애부모가 보조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로 요구하는지 등은 지극히 부모 개인의 선택인 셈이다. 부모 자신의 신체 및 이동 능력, 지적 능력, 개인 욕구, 자녀 특성, 육아 기대치 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부모가 스스로 결정하는 사항이다.

"우리는 보조서비스 필요 없어요!"

당근을 손에 쥔 아이가 당찬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대답한다. 이에 엄마는 살짝 미소 지으며 아이와 함께 다음 코너로 돌아간다. 할머니는 이들의 모습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고, 나는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다.

"시각장애인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면 보조서비스를 받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각자 처한 삶의 조건과 능력 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부모라고 언제 어디서나 보조서비스가 필요하진 않아요."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할머니는 다른 코너로 가버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