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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벤의 잘못이 아니죠"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의 노력 필요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2-08 10:14:10
“Autistic kids are generally not being ‘naughty’. They are trying to manage difficult, stressful, scary things in a world which often does not accept or understand them. They need understanding, not punishment.”(자폐를 지닌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말썽쟁이/문제아’ 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본인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렵고,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가득한 것들을 어떻게든 다루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들에겐 벌이 아닌 이해가 필요하다.) –Yenn Purkis

이제 시작인 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 벤이 등교길 차안에서 말했다.

“타일러가 날 자꾸 놀려.”

타일러와는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었지만, 다행히 타일러의 엄마를 알고 있었고 축구와 농구를 사랑하는 ‘운동 소년’ 타일러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당차고 키도 크고 활발하고 거침없는 타일러는 여러모로 정 반대인 벤과 잘 지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엄마의 욕심엔 타일러 같은 아이가 내 아이와 친한 사이로 지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타일러에게 벤은 반응이 너무 느리고 답답한 아이일 테고, 벤에게 타일러는 따라가기 너무 벅찬 상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한 학년 채 60여명도 안되는 작은 공립학교(호주 빅토리아주 초등학교에는 작은 학교가 많다)에 아들을 입학을 시키고, 엄마는 학교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아이들과 부모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혔었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가족들을 잘 알고 있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도 용이해진다.

상황을 묘사하고,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도록 나름 온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벤에게 만만한 일이 아니란 것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정색을 하고 질문하면 벤이 당황하고 입을 닫을 가능성이 높아서, 차분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하여 상황을 파악해 보니 특별히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직 본격적인 왕따와 놀림과 괴롭힘이 일어날 나이도 아니다.

‘어라, 이런 장면 익숙한데…’

벤을 키우면서 중등학교 교사일 때의 일화들이 생각나곤 했다. 수업이나 학급 생활 지도를 하다 보면 유독 상황이나 문맥을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항에만 집착을 해서 상황을 오해하면서 갑자기 울거나 화를 낸다든지, 농담이나 은유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해서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아이들 말이다.

가끔은 상황을 왜곡해서(물론 본인입장에서는 본대로 느낀 대로 판단한 대로 사실을 말하는 것이란 걸 벤을 키우며 뒤늦게 알았지만) 부모님에게 전달하고 부모님은 아이의 말을 듣고 오해를 하셔서 다시 나에게 항의성 전화를 넣는 경우도 있었다.

상황을 조목조목 말씀드리면 오해를 푸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거나 억울한 일’이 되곤 했다. 더 큰 문제는 또래 관계였다. “찐따”, “괴짜”, “이상한”, “별난” 이라는 꼬리표를 달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은밀한 놀림의 표적이 되곤 했다.

교사로서 학급 전체가 ‘어울려 사는 법’에 대한 소양 교육이나 놀리는 아이들을 혼낼 수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교사인 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작 당사자 아이가 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으니 그 아이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기는 역부족이었다.

‘내 아들 벤의 삶도 놀림과 조롱으로 가득 차겠구나.’

성장하는 벤과 그 아이들이 겹쳤다. 어린이 집에서도 또래 아이들과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다른 아이들은 상황을 잽싸게 캐치하는데 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기대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파악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한때는 답답하기만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던 일들이 벤이 자폐성 장애(ASD, 자폐 스펙트럼) 진단명을 받아 들자 마법의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씩 풀려나갔다. 그래서 나는 진단을 내 아이의 마음과 생각 속에 가 닿는 “보물 지도”라고 부른다. 존재의 유무조차도 몰랐던, 그래서 너무나 생경하고 고유하고 때론 신비로와서 엄마가 평생을 참고해 온 일반지도로는 도저히 도착할 수 없는 곳에 벤이 있었다. 마침내 진단은 벤에 대한 의문과 오해로 가득 찼던 일상을 이해와 소통으로 이르게 하는 “길라잡이”가 되었다.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해도 엄마(정형인들)가 본 세상과 벤(비정형인들)이 본 세상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엄마는 상황을 전체로 동시다발적으로 이해하고 보는 데 반해 벤은 카메라를 들이대 한 장면 한 장면 찍어 내듯 분할하여 순차적으로 이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정형인인 엄마는 세부사항을 놓치기 쉬웠고, 벤은 구체적인 사항엔 강하나 전체를 읽어내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필연적으로 세상을 다르게 느끼고, 인지(perceive)하고 처리(process)하는 뇌를 지닌 벤의 삶의 속도는 엄마의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결국 ‘놀림과 왕따와 괴롭힘’은 벤처럼 뇌가 다르게 작동하는 아이들에게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만큼 피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한때 인지/언어/신체적 활동/사회적 기능이 대체적으로 좋아 자폐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벤에게 아빠는 공식적인 진단을 거부 했었고, 엄마는 그렇기에 꼭 필요한 일이라 주장했었다. 벤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벤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줄이고, 스스로 본인을 방어하고,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미리 가르치려면 필수라고 설득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자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본인의 특성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게 하려면 조기 진단이 선행 되어야 한다며 남편의 마음을 기어이 바꾸어 놓은 사람이 엄마다. 아빠는 다음과 같은 엄마의 말을 듣고 마침내 동의했다.

“이제는 벤의 자폐적 특성들이 부끄럽지 않고 사랑스러워!”

벤이 ‘학령기’라는 거친 항해를 무사히 마쳐서 항구에 도착하게 하려면 벤이 만날 교사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일반 교실에 언제나 존재하는 벤처럼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hidden)’ 고기능 자폐를 지닌 아이들(2013년 이전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불렸음)에 대한 교사의 인식(Autism Awareness)과 이해(Autism Understanding), 그리고 이들이 지닌 고유한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Respect)은 절대적이다.

또한 엄마가 아무리 벤에게 비자폐인들의 삶의 방법과 속도를 이해시킨다고 해도, 비자폐인들이 이들의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는 공정한 세상이 될 수도 없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쌍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그런 세상에선 ‘다름’이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아닌, 또 다른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줄 수도 있을 테니까.

진단을 받았으니 이제는 벤의 담임교사를 우리 가정의 인생 여정에 초대할 차례다.

“혹시 ASD(Autism Spectrum Disorder, 자폐성 장애의 영어 명칭) 진단 받은 아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나요?”

벤이 타일러와의 관계를 자주 언급한다는 점과 함께 벤이 가진 특징들을 설명했다. 한참을 듣던 담임이 대답했다.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벤이 ASD를 지녔다고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 벤을 이해하고 지원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도서관에 다양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련한 좋은 책이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게요. 벤의 다름은 벤의 잘못도 아니고, 벤 혼자서 노력하고 바꿔야 할 일도 아니죠.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하죠. 앞으로 제가 벤을 지원하는데 필요한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교문을 나서는데 가슴에서 울컥한 것이 올라왔다. 교사가 당사자인 벤과 엄마인 나에게 더 노력하라고 하지 않아서, 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서, 그리고 모두가 함께 노력할 일이라고 말해줘서 따뜻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이 젊은 교사는 어디서 이런 예쁜 말들을 배웠을까? 벤이 나에게 오기 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공감의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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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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