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시즌이 다가온다.

“새내기” 라는 말속에 풋풋함과 활력이 살아있는 첫 시작!

당사자도 주변인들도 설레이게 하는 바로 새로운 출발!

필자에게도 그런 대학 입학 시즌이 있었다.

단, 비주얼(visual)만 유사하게.....

장애인으로 특수학교 12년은 단도리가 아주 철저하게 잘 되어 있는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그 보호막을 뚫고 나온 세상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웠다. 당시 필자가 다닌 대학은 8,000명 중 오직 시각장애인은 단 1명 나밖에 없었고 그 숫자의 의미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부담이고 두려움이었다.

입학 전 어떻게든 적응하고자 따라간 2박3일 오리엔테이션은 보란 듯이 그 상황을 증명해 주었다. 많은 과들 중에 우리 과 팻말을 찾아 일렬로 줄 서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가능하였고 내가 묵을 객실을 혼자 찾는 거 역시 큰 모험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대형 공연장을 빌려 젊음을 불태우는 저녁시간 여흥은 절정에 이르렀다. 모두가 웃음 짖고 즐기는 그 순간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앞으로 해쳐나가야 할 대학생활이 너무 두려웠고 그런 불씨를 만들어 낸듯한 필자의 장애에 서러움까지 느껴졌다.

다음은 포크댄스 시간. 참 갈수록 가관이다. 동작을 확인할 수 없는 입장에서 즐기기 위해 참석한 다른 짝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필자는 무대로 나가지 않았다. 덩그러니 필자만 객석에 남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신입생 한명이 자리를 지켰다.

내 옆자리로 옮겨 쾌활하게 말을 시작한 그 친구는 양팔이 절단된 후 의수로 생활하는 지체장애인이었다. 당연히 포크댄스가 힘들었을 거구 그리하여 우리는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이다.

친구는 열차사고로 중학교 2학년 때 갑작스레 장애인이 되었다고 하였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는데 그 날 이후 꿈을 접게 되었으며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대입까지 치르며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앞을 잘 볼 수 없는 필자, 두 팔을 의수에 의지해 생활하는 친구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되어 4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비록 서로 신체적 결손은 있었지만 우리가 함께 합체하여 다니면 대학생활에 어려움이 없었다. 친구는 판서 내용을 의수를 활용해 필자 대신 필기해 주었고 교내 어디서든 나의 눈이 되어 길안내를 해주었다. 대신 필자는 친구의 화장실보조를 비롯해 손을 활용한 스킬이 필요할시 언제든 상시대기 상태로 그녀와 함께 했다. 예를 들어 교내식당에서 친구는 메뉴를 읽어주고 나는 배식을 위해 식기를 들어주는 형태였다. 우리의 호흡은 갈수록 앙상블을 이루어 해가 거듭될수록 훨씬 여유 있는 대학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일상적 불편을 해소하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그치지 않았다. 비장애인 친구들과는 공감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내적유대가 탄탄해 지기 시작했다. 서로 처해있는 장애유형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나 가고자 하는 꿈의 방향도 달랐지만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우리는 끈끈한 동변상련의 마음들을 끊임없이 소통하였다.

학교생활동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직, 간접 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 정당하지 못한 편의들로 힘들어 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치유자와 해결사를 자처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묵시적 계약은 대학을 졸업하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금 현재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중도실명인들을 만나게 되면 필자가 제일 먼저 권하는 것은 점자도 자립보행 훈련도 아니다. 같은 장애인 동료들과 친교하며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의뢰 드린다.

이는 곧 자연스러운 동료상담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어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로 인한 상처를 위로받고 자기신뢰를 회복하는데 큰 지지대 역할을 하게 된다. 많은 중도실명인들이 그리하여 다시금 마음을 열고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자각하며 재활을 되씹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장애인 당사자인 우리 모두는 그렇게 지성이와 감천이가 되어 서로를 끌어주고 당겨주며 끈끈한 유대의식아래 동료애를 키워가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닐까? 특정한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나의 정당한 권익과 행복추구를 위해 각자가 아닌 함께일 때 우리는 더욱 건강하게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와 필자의 친구가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로 승화되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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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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