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발표한 비상조차 캡처 화면. ⓒ배융호

지난 4일 서울시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5일 저녁 9시부터 2주간 서울을 멈추는 “사회적 거리두기 비상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집합금지 되었던 시설에 추가하여 상점, 영화관, PC방, 오락실,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놀이공원, 이·미용업, 마트, 백화점 등 일반관리시설도 저녁 9시 이후 모두 문을 닫도록 하고 있다. 다만 필수적인 생필품 구입을 위해 300㎡(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마트 운영과 음식점의 포장·배달은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300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마트(동네 작은 수퍼마켓, 편의점 등)는 허용이 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300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시설은 접근성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현재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의하면 시설의 규모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 정해진다.

[시행령 별표 1 : 편의시설 설치 대상시설(제3조 관련)]

2.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가. 제1종 근린생활시설

(1) 수퍼마켓·일용품(식품·잡화·의류·완구·서적·건축자재·의약품ㆍ의료기기 등) 등의 소매점으로서 동일한 건축물(하나의 대지 안에 2동 이상의 건축물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동일한 건축물로 본다. 이하 같다) 안에서 당해 용도에 쓰이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제곱미터 이상 1천제곱미터 미만인 시설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수퍼마켓·일용품 점은 300제곱미터 이상인 경우에만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서 서울시에서 정한 생필품 구입을 위한 300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마트나 편의점 등은 모두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닌 시설이며, 당연히 편의시설 설치가 안 되어 있어 장애인의 접근이 대부분 어려운 시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장애인등편의법의 시설 규모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 대상을 정한 것은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정 초기부터 논란이 되었던 조항이다.

서울시의 이번 비상조치 방안에서 보듯이 300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시설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되는 공중이용시설이지만, 편의시설 설치 미비로 장애인은 접근할 수 없는 시설이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의 비상조치는 오히려 장애인에게도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 견해. ⓒ배융호

이러한 시설 규모에 따른 접근성 보장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내용이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대한민국 제1차 국가보고서와 NGO보고서(NGO보고서연대 등)를 심사한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에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장애인등편의법의 이러한 시설의 규모에 따른 구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17. 본 위원회는 ... 또한 건물에 대한 접근성에 관한 표준이 건물의 최소 규모, 용적률 또는 건축일자 등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과 이러한 표준도 모든 공공건물에 대해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UN장애인권리위원회 대한민국 제1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 중, 국가인권위원회 번역본)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건물의 접근성과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를 우려했다.

첫째는 장애인등편의법 등 접근성 관련 규정이 건물의 크기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 둘째는 건물의 건축일자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 그리고 세째는 이러한 법률이 모든 공공건물에 대해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장애인등편의법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을 300제곱미터 이상 등과 같이 시설의 규모로 정하고 있으며, 법이 시행된 1998년 4월 11일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해서는 법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소급적용금지라는 법의 원칙 때문이다. 소급적용금지의 원칙은 법령이 제정된 때를 그 기준으로 해서 그 이후에 발생한 사실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장애인등편의법이 시행된 1998년 4월 11일 이후에 신축·개축·증축한 건물에 대해서만 법을 적용하게 된다. 이 때문에 1998년 4월 10일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은 모두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물론 법 최초 시행 때는 2년에서 7년의 경과조치 규정을 두었었다.

부칙<법률 제5332호, 1997.4.10.>

제2조 (편의시설설치에 관한 경과조치)

②이 법 시행전에 설치된 대상시설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은 이 법 시행일부터 2년 이상 7년 내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편의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 대상시설의 시설주에게 지나친 부담이 되지 아니하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이 경과조치에 따라 공공시설물은 법 시행일로부터 2년 이내(2000.4.10)에, 도시철도 역사는 법 시행일로부터 7년 이내(2005.4.10)에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공공시설 외의 민간 시설은 모두 제외되었으며, 이 경과조치도 법 시행일로부터 7년 후인 2005년 4월 12일에 효력을 상실하여 사실상 1998년 4월 11일 이전의 건축물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

UN장애인권리위회의 최종 견해가 나온 후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일정 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 연구를 실시했고, 이 연구에 따라 일정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도록 정책 권고를 하였지만, 아직 장애인등편의법의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외의 경우, "미국 장애인 법(ADA :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대한 미국 법무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신축과 기존 건물(ADA 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 관계없이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는(readily achievable)” 방식의 물리적 장벽 제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의 물리적 장벽 제거가 어려운 경우에는 도움벨 설치, 이동식 경사로 설치 등의 인적서비스와 같은 대안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2016, 국가인권위원회 '일정 기준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

장애인들이 지난 11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생활편의시설 접근과 이용을 위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DB

최근 장애계에서 “1층이 있는 삶”을 요구하며, ‘생활편의시설 접근과 이용을 위해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을 촉구한 것도 그동안 접근할 수 없었던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이용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장애인의 분노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등편의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지난 22년 동안 굳건하게 지켜온 300제곱미터 이상과 같은 면적 제한을 삭제하여야 하고, 소급적용금지의 원칙도 유연하게 대처하여 기존의 건축물의 접근성 보장을 위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시설주의 과도한 부담을 고려하여야 한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신축의 경우 면적의 제한 없이 1층에서의 주출입구 높이차이 제거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신축에만 적용하므로 기존 시설의 시설주는 부담이 없으며, 1층의 주출입구 높이차이제거만 하더라도 상당수의 소규모 시설에 대한 접근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시대에 장애인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등편의법의 조속한 개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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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융호 칼럼니스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서울시 명예부시장(장애)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에서 유니버설디자인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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