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폐성 장애를 겪고 있음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30대 시절 교회의 한 세미나에서였다. 반복적으로 말하고, 몸 흔드는 행동을 하는 게 자폐성 장애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이다.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소통도 어려웠고, 눈치도 빠르지 못해 힘들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상처도 많았고 상당히 외로웠다.

그런 가운데 작은 누나랑 대화할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누나는 나의 자폐성 장애가 내가 관계에서 어려워하는 원인 중 하나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순간 힘들었지만, 마음에서 뭔가 자유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사람들이 물어보면 나 자신의 장애에 대해 아는 대로 이야기한다. 물론 힘든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나의 장애에 대해서 먼저 안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말을 반복하고 몸을 흔드는 것 등의 2%만 고치면 된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그리고 장애인 축에도 속하지 않을 정도로 너는 정상이니 내가 장애인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한다.

그런데 말을 반복하는 것이라든가, 가끔 몸을 흔드는 것이나, 저 장면에 왜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고, 보통 사람들이 많이 하는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눈치도 없는 등 내가 생각해도 장애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고치기 쉬울 것 같지만 이게 생각만큼 쉽지도 않다. 완화만 되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자폐성 장애를 다양성의 한 일부로 보지 않고, 고치거나 없어져야 하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의 영향을 엄마도 받았을 테니,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내가 장애를 겪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 사회에서 따돌림, 배제가 공식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뤄질 걸 당신께선 아셨을 거고, 내 자식이 따돌림당하는 게 당신은 싫을 테니.

그런 것 때문에 엄마는 나의 장애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30대까지 나 자신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눈치‧배려가 없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워 동료들에게 괴롭힘당할 만하니 당했나 보다 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사회였다면 엄마가 나의 장애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나 자신이 장애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데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9년 전에 인정하고 직장 다녔을 때 조금씩 장애에 대한 가치관이 생겨나기라도 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사회가 자폐성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다 보니, 자폐인인 자녀의 장애를 숨기려는 부모들이 꽤 있으며 자신의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당사자들도 많다.

자폐 장애등록 관련 진단에선, 발달장애인법 제23조 2항에 따라, 발달장애가 의심되는 영유아에 대해서만 지원될 뿐이다. 성인 자신이 자폐성 장애가 있다고 의심해, 장애진단을 받으려 하면, 높은 진단비용에 대한 국가, 지자체 차원의 비용지원은 없는 거다.

여기에 자폐성 장애의 판단기준인 IQ가 포함되어, 고기능 자폐인들이 자폐 장애를 겪는데도 IQ로 인해 등록되지 않는 현실도 있다. 이런 현실들로 인해 미등록 자폐성 장애인들은 법적으로는 장애인이 아닌 것으로 되니, 근로지원인서비스, 장애인 사법지원, 대학에서의 정당한 편의 제공, 독립 주거 지원서비스, 장애인연금 등을 받지 못한다.

자폐성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이 있어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일자리 구인모집도 신체장애 쪽이 주이며, 업무능력의 부재라는 이유를 들어 자폐인의 채용을 꺼리는 건 물론, 자폐인이 장애인연금 수급자여도 지원수준이 최저임금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결국 자폐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높은 진단비용에 대한 미지원과 자폐성 장애의 IQ판단기준, 자폐인들에 대한 지원 부족 등으로 인해 약 3만 명 정도의 자폐인들이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라 본다.

이런 현실이니, 미등록 자폐인들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장애 관련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함은 물론, 사회의 편견 속에 삶의 질 하락을 경험하며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이에, 미등록 자폐인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알리고, 관련 장애계 및 장애인 비례대표들과 소통하며 국가‧지자체에 구체적인 권익증진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국가‧지자체가 미등록 자폐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하며, 결국엔 이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삶의 질을 증진하는 조치들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등록 자폐인들이 자신의 신경 다양성을 드러내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존중된 상태로 지원을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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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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