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3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가 개최한 ‘발달장애인법 제정 촉구 문화제’ 모습. ⓒ에이블뉴스DB

발달장애인법이 6년 전 5월 제정된 후, 1년 반 뒤인 2015년 11월 21일 동법이 시행되었다. 올해 11월 21일이면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된 지 5년 된다. 참 시간 빠르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법 시행으로 인해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소리를 별로 듣지 못했다. 오히려 가족들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적이 많았다.

부양부담에 견디다 못해, 중증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자살하는 일들을 지금도 뉴스를 통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학대는 전체 장애 유형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당사자들과 가족의 인간다운 삶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를 보면,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나,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제공자 중심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법을 조금 더 보게 되면서 그 느낌을 더 받게 되는데 몇 가지만 얘기해보겠다.

먼저 법 제8조는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내용이고, 그 조 3항에는 스스로 의사 결정할 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보호자가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나온다.

여기서 충분하거나 상당하다는 것은 추상적이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보호자의 대리‧대행이 가능할 여지를 남겨주는 거다. 이는 장애가 심하면 의사결정 무능력으로 판단해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의사결정에서 배제해 이들의 권익 침해에 대한 우려를 안긴다.

2013년 3월, 연구소에서 주최한 발달장애인법 제정 당사자 토론회 '발달장애인! 우리가 말한다'가 열린 모습. 그 당시 동문장애인복지관 Our voice에서 활동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한빛나씨의 축사 장면(왼쪽 위 사진), 한국장애인부모회 노익상 회장의 축사 장면(왼쪽 아래), 발달장애인법 당사자 토론회 전경(우측).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제11조에는 자조단체 지원 및 육성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 그런데 자폐성 자조단체에 대한 지원은 없으며 지적장애인 자조단체 경우도 이는 마찬가지인 게 현실이다.

한편, 자조단체와 관련해 정부는 작년 3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활성화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사자보다 부모 자조모임의 활성화가 중심이며, 사회적 협동조합 주체는 장애학생 부모 자조모임인 것은 물론,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있는 생활체육, 문화예술 등이 자조모임 콘텐츠라 자조모임에서의 당사자 자율성을 크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

제13조에는,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 내용이 있고, 이 조항에 따라 지적‧자폐성 장애인 전담 경찰과 검사를 둔다. 하지만 전담 경찰과 검사의 전문성이 낮고, 잦은 보직 변경으로 지적‧자폐성 장애인 사례를 전혀 담당해보지 않은 전담경찰관 지정의 경우가 많다.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인 사건과 관련, 전담경찰관에게 배정되는 비율은 낮은 실정이다.

발달장애인의 문화‧예술‧여가‧체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특성과 흥미에 적합하게 설계뙨 시설, 놀이기구,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제27조에 서술되었다. 이와 관련해 동법 시행령 13조에선 발달장애인의 문화‧예술‧여가‧체육 활동 지원을 위해 문화예술 활동시설 설치, 생활체육 활성화, 여가생활시설 등에 대한 접근성 확보 등의 시책을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정책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와 문화예술 담당인 문화예술관광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이들 조항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 활성화를 위한 혜안을 장애인 당사자와 관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건복지부, 문화예술관광부 등 관계부처의 협업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부분이다.

2015년 11월 22일, 발달장애인들이 환하게 웃는 가운데 진행된 ‘반갑다, 발달장애인법’ 출판 기념행사 전경. ⓒ한국장애인개발원

발달장애인의 교육지원에 대해서는 제26조에 있지만, 이마저도 평생교육만을 명시했다. 대학교 등의 고등교육을 받는 고기능 자폐인 당사자 등 고등교육 지원에 대해 명시한 사항은 없으며, 실제로 평생교육마저 중증장애인의 욕구만 반영되어 있고, 통합된 환경이 아닌 분리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게 거의 대부분인 현실이다.

소득보장에 대해서 명시한 제28조의 경우, 소득을 어떻게 보장하겠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시행령, 시행규칙에 나와 있지 않다. 실제로 보호작업장에서 월 10만 원을 받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수두룩하며, 심지어 법에 나온 장애인연금도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수급기준을 정하고 고기능 자폐인/지적장애인은 이 연금을 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것이 발달장애인 서비스에 관련된 개인별지원계획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나 보호자가 서비스를 신청하면, 발달장애인법 제18조의 개인별 지원계획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되는 서비스들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보다는 구 장애등급에 기반한 서비스라, 오히려 당사자들은 삶의 질 향상보다는 현상 유지만 할 가능성이 높으며, 서비스의 주체보다는 객체로 전락할 우려를 안고 있다.

더군다나 맥락에 따른 정보제공이나 친구도우미 서비스,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 등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내용이 발달장애인법에 녹아있지 않고, 지적장애인에게 해당되는 알기 쉬운 정보 등의 내용들만 반영되어 있다. 향후 자폐성 장애인의 의견을 묻고 수렴해 발달장애인법 개정이 필요함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2015년 11월 22일 출간된 ‘반갑다, 발달장애인법’ 표지(왼쪽), 올해 11월 출간된 발달장애인법 해설서 ‘다 함께 우리!’ 표지(오른쪽). ⓒ한국장애인개발원,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이외에도 발달장애인법상의 위기발달장애인쉼터 운영주체가 장애인거주시설이라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고문이자 인권침해가 유발될 수 있다는 점,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위탁구조에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인력의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등, 발달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음은 이전에도 얘기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이처럼 발달장애인법은 지적‧자폐성 장애인보다는 국가‧지자체 중심인, 다시 말하면 이용자 중심이 아닌 제공자 중심의 법 내용이거나 실제로 그렇게 운영된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장애인법은 실효성이 거의 없으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은 말뿐이자 선언적인 것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법이 진정으로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주인공인 법이 될 수 있도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권리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사회 전반에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법 개정 시 전문가나 부모 중심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을 참여시키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발달장애인법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차원의 활발한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고 법을 알기 위한 당사자들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는 한, 발달장애인법은 실효성이 없게 되어 결국엔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손에 폐기되는 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5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 목소리에 국가와 지자체, 정치권이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발달장애인법이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의 권익을 증진하는 법으로 거듭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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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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