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그곳에 동해바다가 있다

경주 그곳에 주상절리가 있다

경주 그곳에 읍천항구가 있다

경주 끝자락엔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과 해녀가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경주 역에서 40분 남짓 동쪽으로 향하면 읍천항이 있다. 이곳엔 30여 명의 해녀가 물질로 생계를 꾸려간다.

읍천항엔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돌미역 채취 기간이라 지나가는 강아지 손이라도 빌릴 판이라고 한다. 해녀는 바다에서 미역을 따 뭍으로 건져내면 기다리고 있던 동네 남정네와 아낙들은 바지런히 손질해 볕 좋은 곳에 널어놓는다. 생미역은 바닷바람과 봄볕에 사나흘 간 잘 말리면 질 좋은 최고의 미역이 된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경주에도 해녀가 있다는 건 생각지 못했어요”

“해녀 일은 얼마나 오래 하셨어요”

“삼십 년 넘었지, 경주도 해녀 많아”

“지금은 노인들만 해녀일을 하지만, 그전엔 젊은 사람도 많았어”

“생미역 먹어볼겨?”

“생미역도 먹나요?”

“이거 겁나게 맛있어 간도 짭짤하니”

“늙은 해녀들 다 죽으면 이젠 경주도 해녀가 없어질 텐데 큰일이여”

“이 일로 자식들 다 공부시키고 판검사도 만들었어”

“움직일 수 있을 때 일해야지”

바람은 해녀의 손에 물기를 말리고 손등에 소금 꽃을 피웠다. 스카프 사이로 봄바람이 파고들고 머리 체를 쥐고 흔드는 것 같이 세차게 불어댄다. 아낙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은 시간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경주를 그렇게 많이 오가면서도 바다가 있다는 것을 모른 척했다. 첨성대, 불국사, 대릉원 등 유물 단지만 둘러보다가 이번엔 지도를 펼쳐 들고 경주 끝자락까지 왔다. 마을주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며 읍천항에 지나온 시간을 물어본다.

“이래 봐도 읍천항은 1호 항구여”

“나라에서 관리하는 항구라구”

“그래서 여그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혀”

읍천항 어부는 방금 잡아 온 도다리와 아귀를 꺼내 들며 바로 썰어 회덮밥을 만든다.

“바다에서는 음식 해 먹기가 불편하니까 바로 잡은 물고기로 밥 넣고 초고추장 넣고 대충 비벼 먹어”

“한번 먹어볼래요”

“요래 싱싱한 걸 바로 먹어야 힘내서 바닷을 잘 할 수 있거든”

어부가 건네준 회덮밥은 맛이 기가 막힌다.

화려한 양념 대신 재료 본연이 싱싱함으로 맛있고 단출한 회덮밥이 됐다.

“밥 다 먹었으면 여기 읍천항에 주상절리가 있으니까 거기도 가봐요”

“쩌기 보이죠, 저긴 전망대여, 저기서 보는 경주 바다 풍경이 끝내줘요”

회덮밥 한 그릇 다 비우며 어부와 작별인사하고 전망대로 갔다. 바다로 나 있는 데크 길이 있지만, 계단이어서 접근할 수 없다. 해양공원 주변은 두리번거리다 찻길로 빙 둘러 양남 전망대로 갔다.

양남 전망대는 몇년 전 만들어진 새 건물이다. 전망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출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7층 높이의 건물이 무료로 개방돼 이곳을 찾는 여행객에게 전망 좋은 경주 바다를 선물한다.

탁 트인 전경과 파란 바다, 가지런한 주상절리는 숯가마에서 방금 구워진 참 숯 같다. 이곳은 오랫동안 군사지역이었다. 그런 이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해군이 철수 하고 주상절리 전 구간을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까지 해안 풍경과 조화를 이룬 길 덕분에 관광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동해안을 이어주는 해파랑길과 겹쳐 있어 자전거와 뚜벅이 여행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경주 여행은

게으른 여행 (Lazy travel)이었다.

경주 천년의 시간처럼

바쁠 것 없이 천천히 가는 시간을

느릿느릿 바라본다.

때로는 파란 하늘이나

시원한 바람 한 점을 친구삼아

열심히 살았던 나를 위해

많이 많이 게으른 여행을 선물했다.

“오늘 얼마나 게으른 여행이었습니까?”

나에게 안부 인사해봅니다.

-가는 길

KTX 신경주역, 동대역에서 무궁화호 경주역

경주 장애인 콜택시 즉시콜 054-777-2811

-접근 가능한 식당

함양집, 한우물회, 전화 055-746-9990

-접근 가능한 숙박

경주 환화 리조트

베리어프리 객실 전화 054-777-8400

-접근 가능한 화장실

읍천항 남양 전망대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http://knat.15440835.com/

읍천항. ⓒ전윤선

읍천항구. ⓒ전윤선

읍천항 미역. ⓒ전윤선

양남 전망대. ⓒ전윤선

양남 전망대 본 주상절리. ⓒ전윤선

양남 전망대에서 본 주상절리. ⓒ전윤선

접근 가능한 한우 물회집. ⓒ전윤선

한우물회.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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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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