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친정형제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는 5자매인데 그날은 네 자매가 친정에 모였다.

아이들은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남자들은 거실 쇼파에 모여 텔레비전 보고, 우리 여자 형제들은 커피 한잔씩을 들고 구석방에 모여 코로나 이야기, 경제 이야기, 아이 이야기로 수다를 이어갔다.

그런 와중에 살이 갑자기 많이 붙은 셋째가 옷 타령을 하며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 옷 살 때 밴드는 불편해."

"어? 왜? 살 있으면 훅 보다 밴드로 된 게 더 편하지 않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제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순간 뭔가 재미있는 액션이 있었는데 보지 못하는 나만 놓쳤나 싶어 잽싸게 물었다.

"왜? 왜? 무슨 일이야? 나한테도 말해줘."

내 말에 형제들은 더 깔깔거리며 웃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갑자기 살이 붙은 셋째가 옷 타령을 한 것 까지는 맞는데 옷 타령을 하면서 밴드에 올라온 옷들을 검색하며 한 말이었기에 다른 형제들은 맥락상 그 밴드가 온라인 밴드라는 걸 알았고 몰랐던 나는 그 밴드를 허리 밴드로 착각한 것이었다. 설명을 듣고 우리 모두는 또 한바탕 웃었다.

장애는 막을 장(障)에 꺼릴 애(礙)자를 쓴다. 장애라는 한자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장애인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나 느낌이 떠오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장애인에게 장애를 거론하는 게 실례이며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중도실명 후 비장애인으로부터 먼저 "시각장애가 있으세요?" 혹은 "앞을 보지 못하나요?" 같은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에 대해 언급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이 불쾌감을 느끼며 무시당했다고 여기는 게 아니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그것이 확고부동한 사실인 양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말과 행동에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차라리 알지 못하면 섣부르게 판단하기 보다 직접 질문하는 편이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더 고마운 일이다.

신체의 장애가 곧 마음의 장애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장애가 있으면 왠지 우울하고 피해의식에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매사 부정적이며 자존감이 낮아 쉽게 상처받고 그에 대한 회복 탄력성이 부족한 사람 일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장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 한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게 당연한 것인데 장애인은 장애로 부정적인 감정만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앞서의 상황에서 형제들은 내 장애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로 인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모두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만약 내 말에 형제들이 '아이고, 보지 못하니 저런 말을 하는구나. 참 안됐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우린 함께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장애로 불편하기도 하지만 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우울하고 불행한 건 아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장애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장애로 일어나는 상황에 함께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어쩌다 비장애인들에게 필자의 장애로 인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주위 분위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진다. 웃자고 한 소리인데 슬픈 이야기라도 들은 분위기이다. 오히려 필자가 그들에게 대단한 실례를 범한 듯한 느낌이다.

부디 장애는 장애일 뿐 오해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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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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