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서 지급받은 마스크. ⓒ정민권

문자 하나를 받았다. 중증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마스크가 있으니 주민센터로 방문 수령하라는. 하나도 아니고 세 개를 받아 왔다는 말에 지인의 반응은 "좋겠다"였다. 무엇이 좋아 보였을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게 된 이 시기여서? 마스크를 쓰는 게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예방책이라는 마스크 하나 사겠다고 짧아도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이 없어서? 아니면 누구에게나 지급되지 않는 것을 중증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지급받게 돼서? 그 말은 장애인이 부럽다는 이유도 될까? 꼴랑 마스크 세 개로?

주차장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온 얼굴을 마스크에 목도리와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은 주민을 만나는 일은 당황스럽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주하게 되면 더더구나 당황스럽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올라가는 단 몇 초의 찰나이지만 그에게선 "이런 시국에 누굴 죽이려고 저러고 다니지?"라는 혐오의 눈빛이 역력하고 그런 눈빛에 당황하는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는다.

온 세상에 창궐한 이 바이러스는 아직 인류가 미처 대처하지 못한 질병일 뿐이지만 머지않아 곧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의 진정한 힘은 인류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는가가 아니다.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던, 질병이라면 질병인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고 확산시키는 데 있다. 그것도 어마 무시할 정도로.

이탈리아는 비교적 버티는 힘이 강하다고 알려진 젊은 사람을 먼저 치료하겠다고 나서면서 누구를 살릴 것인지 고민하는 모양새고, 영국은 대부분의 국민이 걸리면 자연 항체가 만들어질 테니 치료를 유보한다거나 70세 이상 노인은 외출금지령을 내릴 태세다.

중국은 질병의 발원지이면서도 전 세계로 확산되니 최초 발원이 중국이 아닐 수도 있다고 발뺌하고 오히려 자국의 국경을 폐쇄하고 나섰다. 일본은 자신의 선거전략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 질병을 어떻게든 축소 은폐하려다 자국민조차도 보호하지 못하는 지경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들려온다.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저만 살겠다고 난리다.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바이러스의 기세가 좀 꺾기긴 했다. 하지만 2주만 하자던 캠페인은 점점 연장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예민함은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식당에서 널찍하게 떨어져 마주 보지도 않고 한쪽 방향으로 앉아서 혼밥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밥맛없게 느껴진다.

영세 사업자보다 더 큰 문제는 소외계층에게는 이 거리두기가 시베리아 벌판만큼이나 춥고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복지관이 전면 폐쇄된 지 벌써 3주를 넘기고 있다. 나름 사회복지사들이 소외계층이나 재가 장애인들을 찾아다니며 반찬과 마스크, 손소독제 같은 필요한 물품을 나누고는 있지만 이 역시 서로가 힘겨운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장애인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것보다 더 큰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두려움을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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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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