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몸살로 낑낑 앓았다. 요즘엔 아파도 안된다는데 그렇게 되었다. 몸살이 생긴 까닭은 코로나19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마스크 때문이다.

지난 9일부터 시행된 공적 마스크 5부제로 지금은 심리적 불안감이 조금 가시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마스크 구입으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고생 안하고 쉽게 받을 수 있긴 한데 한 장에 5000~6000원씩 하니 손 떨려 클릭할 수가 없었다.

공영쇼핑에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공영쇼핑 방송을 틀어놓고 마스크 방송이 나올 때마다 딸아이와 둘이서 080번호를 눌렀지만 그건 정말 로또 당첨되는 것 보다 어려웠다. 넋 놓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약국 구매로 계획을 바꾸었다.

장애인은 대리구매가 가능하니 남편에게 부탁하였지만 언제나 빈손이었다. 하긴 회사 일하는 사람이 짬 내서 나갈 시간은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 이후 뿐인데 마스크 입고 시간은 일정치 않고 물량도 적으니 입고되기도 전부터 줄 쓴 사람들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라는데 퇴근 후까지 '나 데려가슈'하고 기다릴 마스크가 있을 리 만무했다.

활동지원사에게 부탁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자기 마스크 구하기도 힘들텐데 내 몫까지 엎어서 기약 없이 약국 뺑뺑이 돌리는 셈이니 미안한 마음에 차마 입도 떼지 못했다.

딸아이를 데려가는 게 못내 걸렸지만 어쩔 수 없이 딸아이와 약국을 돌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30분에 나가서 약국 6군데를 돌고 1시간 30분 동안 줄 서서 기다린 끝에 딸아이 몫까지 마스크 4장을 겨우 손에 넣었다. 그리고 몸살도 같이 얻었다.

마스크 구하러 다녀본 사람이라면 필자의 경험에 공감할 것이다. 마스크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 구매가 절실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애인에게 대리구매하도록 하였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 그래도 모두 힘든 시기이니 어찌어찌 헤쳐나가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자치구(부산 연제구)에서 마스크를 무료로 지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군.' 하는 마음으로 구청에 문의 전화를 했다. 통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마스크를 무료로 준단다. 그런데 수급이 어려워 구민 모두에게는 지급하지 못하고 65세 이상과 12세 미만의 아동에게만 마스크 2장을 지급한단다.

그래서 "장애인은 대상이 아닌가요?" 했더니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되려 나한테 묻는다. "장애인은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주지 않나요?”

어처구니가 없고 기암이 차서 통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벌렁이는 가슴을 다독여야 했다.

해당 관계자는 필자가 단순히 장애인에게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항의하는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마스크 수급이 어렵다는 사실은 말 안 해도 안다. 그래서 장애인 모두에게는 힘들더라도 최소한 중증장애인에게는 지급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65세 이상의 노인과 12세 미만의 아동들보다 장애인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장애인에게 마스크를 대리구매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만큼 신체적 물리적으로 마스크 구매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인데 중증장애인까지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애인은 어차피 활동하기 어려우니 이참에 집에만 있으라고 제외시켰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장애인 관련 기관을 언급하며 장애인은 자신들의 관리 책임이 아닌듯한 태도가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장애인은 이 땅에 살지 않고 허공에 존재하는 사람이던가? 장애인의 복지와 인권 보호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장애인 관련 기관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우리 장애인에게 국가와 지역사회는 어떤 의미인가? 장애인의 마스크 수급을 장애인 관련 기관의 문제로 치부한다면 마찬가지 맥락으로 65세 이상 노인은 노인복지 관련 기관에서 그리고 아동들에 대한 마스크는 학교나 교육청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합당하지 않은가?

필자가 볼 때 이번 자치구의 마스크 무료 지급 계획 수반에 있어서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게 분명해 보였다. 의도적으로 장애인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정책 수반에 있어서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은 엄연한 행정 당국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과 핑계를 대며 자신들의 실수를 합리화 정당화시키려는 그들의 못난 자만심이 괘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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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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