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시세계, 거시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 ‘바이러스’라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이라는 이 흉물 덩어리가 몰고 온 충격으로 사회 속에서 맞물려진 각각의 톱니바퀴들이 서로에게 동력을 전달하지 못한 채 서서히 멈추어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고 명명된 이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는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무서운 속도를 내며 창궐하고 있는 현실은 의학과 과학이 날로 발전을 해가지만 인류는 여전히 전염병에 자유롭지 못한 것을 반증하고 있는 듯하다.

변종이 쉽게 일어나 치료법이나 백신 개발이 어렵고 생물체의 세포를 숙주로 삼아야 번식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온갖 바이러스로부터의 공포는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연결되는데, 지금 당장 그 병리적 체험을 내 스스로 앓고 있는 중이다.

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2월을 강타하고 3월에 들어선 현재까지 전국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의 알림 정보를 접하며 나는 심한 무기력증에 빠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바닥을 보이는 법이라고.

특정 국가·국민을 향한 반감, 국민 건강을 뒷전으로 한심한 정치적 관계 사이의 대립, 어느 종교단체의 몰지각한 행태와 그 종교단체를 향한 혐오, 비난 등이 방송이나 활자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뱉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겪고 있자니 우리의, 아니 내 안의 모습이 보여 지는 듯 자괴감이 앞섰다.

게다가 국가적 위기에 대한 사회적 장치가 미비한 문제점들을 보며, 이런 전염성 강한 전염병이 도는데 약자인 장애인의 의학적 예방 차원의 대책은? 감염이 되었을 때 전문성 있는 케어에 대한 매뉴얼은? 사회복지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도 당연히 의료처치를 받아야 하는 그 권리의 현주소는? 아! 그럼,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의사전달 능력이 약한 발달장애인이 감염되면 장애 특성을 잘 아는 인력이 지원되어야 하는데? 당장 자폐성발달장애가 있는 내 아들이 감염되면? 엄마가 병원으로 따라 들어가야겠지? 그런가? 아닌데? 왜? 왜? 엄마인 내가 따라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을까?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존재해야지? 전염병으로 인한 국가 재난 시에 대한 법령을 찾아봐야겠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관한 자료를 어디에 두었더라?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재난 알림 문자와 뉴스가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조급하게 몰아세우고, 아들의 복지관 프로그램도 무기한 휴관, 취재와 미팅, 간담회 취소 등을 알리는 문자가 휴대폰에 매일 한가득 쌓여 가고, 하루아침에 내 일상이 태엽 풀린 시계처럼 멈춰버렸다.

이렇다 보니 발달장애화가로 활동 중인 아들의 전시 계획도 멈춰지고. 4월 예정 전시도 불투명하게 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아르브뤼코리아 사회적협동조합의 미술예술 활동도 잠시 주춤되고 있으니 대표를 맡고 있는 입장으로서 걱정스러운 것도 한몫하는 듯 매일이 우울감에 쌓여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다.

장애인예술의 흐름을 읽어내고 선별하여 칼럼으로 소개하는 것이 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에서는 예술이 이러쿵저러쿵, 예술인의 공연과 활동이 제동 걸린 현실이 이렇다 저렇다, 글 소재로 쓰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하던 우스갯소리가 새삼 마음에 얹힌다. 정부는 위기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했고, 도대체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건 각자도생뿐일까? 조선시대 기근이나 전쟁 등의 상황일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 이 각자도생(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다는 뜻)......

서글퍼졌다. 모두가 생업에 타격을 입어 생활을 걱정해야 하고, 앞에 닥친 위험요소에 바짝 곤두서 있는 우리들 모두는 이렇게 내 살길을 내가 찾아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다니!

마치 반항 가득 사춘기처럼 내 마음은 온갖 불만과 남의 탓으로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생채기를 내면서 뉴스를 보며 투덜투덜, 라디오를 들으며 궁시렁궁시렁, SNS를 기웃거리며 시큰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내 불량한 마음을 한순간에 순화시켜 준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정헌 작가의 <힘내자, 대한민국!!!>. ⓒ이정헌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 중인 이정헌 작가가 SNS에 올린 그림 한 장......

<힘내자, 대한만국!!!> 이라는 제목을 달고 게시된 이 그림.......

이정헌 작가에게 연락해서 간단 취재를 했다.

작가는 “처음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매일 성실과 책임을 다하는 브리핑을 보고 응원의 의미로 시작했는데 생각해 보니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고 있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떠올라 그림에 등장인물 묘사가 추가되었는데,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라는 공공성을 알리고 주변의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이 그림에 대한 소회를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했다.

애니메이션 작가라고 하면 빠른 속도와 경쾌함으로 장착된 스피드한 콘티가 떠오르는데, 이정헌 작가에게서 르포 작가 같은 의외의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아마 그것은 애니메이션에 관한 나의 무지함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분야도 다양한 작품세계가 있다는 상식조차 무심했던 내 알량한 한계에 반성하며 작가가 작업하는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이정헌 작가의 대표작은 <괜찮아요, 우리는 천천히 가족 2018. 코미카>, <파락호 김용환 2019 다음 웹툰> 등으로 역시 빠른 템포는 아니지만 작품을 보며 스스로를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자극이 훌륭하다.

작가가 함께 힘내자는 메시지를 발산하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를 내 마음속의 불안함이 주는 일렁거림으로부터 탈출시켜 준 이 약효는 바로 예술이 주는 치유와 선함이리라 주저하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가 다시 생각난다. 정크아트 예술가 팅겔리가 “예술은 사회의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야 한다”는 사회 안의 예술이란 의미를 이정헌 작가의 <힘내자, 대한민국!!!>을 통해 앞으로 발달장애미술인의 예술의 테제(These)로 삼을 것임을 새삼 다잡아 본다.

지금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역습의 위험요소로 불안하지만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견뎌야 하는 시간동안 내 스스로 심신의 건강을 위한 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

요즘 재미 들린 미스터트롯을 보며 둠칫 두둠칫 허리를 흔들며 아들 규재를 부른다. ‘규재야~ 어때? 엄마, 춤 잘 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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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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