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여보소 이 내 한 말 들어보소! 삼대 할아버지 삼대 조모님 그 지체 쓸쓸한 울 아버지 울 엄마, 인간의 죄를 얼마나 지었건데 몹쓸병이 자손에게 미쳐서 이 모양이 꼴이 되었을꼬. 아부지야 엄마야 괴롭구나!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양반인들 무엇하며 재산인들 쓸 데 있나! 살아 생전에 마음대로 살다 죽으라네. 만사 모두가 여망(餘望)없는 내 신세야!”

통영오광대 문둥이 역할 대사다. 문둥이 역시 양반으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센병이라는 병으로 눈, 코, 입, 손끝, 발끝이 문들어져 다른 사람들과는 외모적으로 많이 다른 형태의 장애다.

우리나라 전통 탈극에서는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종종 주인공 역할로 많이 나온다. 대부분 양반이 하는 짓들을 풍자하기 위한 역할로 죄를 지어 즉, 누군가의 업보로 인해 장애를 갖고 태어나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전통 탈극에서의 장애인들은 뒤로 숨지 않는다. 의외이지 않은가?

대학 때 사회대 문화패를 들어가 집회에도 참여하고 선배들이 자취방에서 몰래 보여 주는 비디오를 보며 꿈을 키웠다. 물론 야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광주사태, 419 1등에 대한 영상물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리 되려고 동아리 활동을 가열차게 한 듯하다.

겨울에는 겨울전수라고 하여 버려진 폐교 같은 곳을 빌려 10일도 넘는 기간을 장구, 꽹과리, 북 등의 앉은반, 선반, 영남, 이런 것들을 배웠고 여름에는 여름전수라고 하여 통영오광대 전수관에서 비슷한 기간으로 통영오광대를 익혔다.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모든 활동들에 제약이 있었다. 그래도 좋았으니까, 할 수 없어도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된 것이다.

특히 통영오광대에서 문둥이 역할이나 이매 역할은 정체성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촉매제 같은 것이었다. 문둥이는 아마도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난 모습이 달라 친구도, 벼슬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천대와 가족들의 멸시를 받고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한이 쌓여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지금 장애인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가끔 TV에 장애인이 나온다. 뉴스나 휴먼다큐멘터리 같은 곳에서 장애인은 극적인 모습으로 나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혹은 도와 줘야 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다른 상황에 대해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도록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떠오른다. 화가 난다라고 해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대중매체에 나오는 것이 나은 것인지...

통영오광대에서 문둥이나 이매 역할은 학생들 중 끼가 가장 많고 춤을 잘 추는 사람에게 맡긴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역할들 중 문둥이나 이매를 하기를 원한다. 우리 기수에서도 가장 멋지게 추는 녀석이 했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힘들어 하기는 한다. 장애로 인한 감정들, 가슴 속의 한? 이런 것들을 느껴 보지 않아서도 있고 장애로 인한 뒤틀린 몸짓도 어렵다. 어떤 기수의 선배는 침도 질질 흘려 주신다. 이매가 사람들 앞에서 뒹굴고 넘어지는 모습에서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한때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어려웠었다. 한 번도 내가 자랑스럽다거나 내가 가치 있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뒤뚱거려야 하거나 기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도망을 갈 수 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일생을 울고 불고 주절거리다, 문둥이 이매와 만났다.

그곳에 벅수라는 사부님이 계셨다. 꽤 오래 전부터 통영오광대 전수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지키시는 분이시라 했다. 전수관에서도 기어야 했으니 나는 또 얼마나 움직이는 것이 싫었겠는가? 한 번은 밥을 먹고 나서 학생들이 연습을 해야 해서 뒤쪽으로 물러나야 했다. 사부님께서 업히라며 등을 내어 주셨다.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그 “나아지겠지”의 주어는 사회였다. 통영오광대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회를 풍자하는 극이다. 문둥이나 이매까지도 품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시는 이야기셨다. 연습이 끝난 밤이면 나까지 낀 자리에서 자주 노래도 불러 주시고 이야기도 나눠 주셨다.

어쩌면 나는 장애를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뒤뚱거리며 걷든, 기어야 하든, 휠체어를 타든 상관이 없었을 수도 있다. 시도해 보지 않고 받아 주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이 넘어지고, 무릎에서 피도 나봐야 굳은살이 돼서 딛고 일어날 때 덜 아플 것도 같다.

“나아지겠지” 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인들의 삶이 그렇게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둥이가 살던 몇 백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다. 내 삶이 쥐똥만큼 변하고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수록 더 많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문둥이가 되고 싶다.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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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주 칼럼니스트 현재 삼육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장애 전반, 발달장애 지원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장애인 당사자로 당사자 지원에서, 일상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느꼈던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체장애인으로 보여지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 일상생활 자체가 글감이 될 수 있어 나는 좋은 칼럼니스트의 조건을 갖고 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매개로 생각하고 지나다니다 본 것들에 대해, 들은 것, 경험한 것들에 대해 쓴다. 전동휠체어 위에서의 일상, 지체장애인으로의 삶에 대해 꿈틀꿈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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