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도서관 휴관”

책을 좋아한다. 가난한 장애인인 나는 책을 사보기가 어렵다. 우리 동네로 이사 온 단 하나의 이유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 휴관 소식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한다? 당분간은 책을 사서 봐? 집에 있는 책으로 대처? 여러 방안들을 생각하는 중이다.

집에 있는 소중한 책들은 읽고 또 읽어서 닳고 달아 책을 들면 조각조각 부서지는 책들이다. (아니면 아예 사서 한 페이지도 읽지 않은 제목만 보고 사서 내가 원한 내용이 아니면 그렇다.) 그 중 심한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다. 상실의 시대에는 정신요양원이 나온다. 책 내용이야 줄줄 꾀기는 하지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접어 두기로 한다.

정신병원 의사를 대상으로 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로젠한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7명과 함께 한 실험이다. 각기 다른 증상을 만들어 의사와 이야기한 후 입원 전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들의 행동 일부를 정신병적인 증세로 치부하였다고 한다. 오히려 입원하였던 ‘진짜’ 환자들이 이들이 ‘가짜’ 환자라는 것을 눈치챘다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전문가라는 정신과 의사들이 ‘진짜’ 환자와 ‘가짜’ 환자를 구분하지 못해 입원을 허락했다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잘 아는 부부가 있다. 잘 아는 분의 남편분께서 정신장애인이셨다. 같이 살지는 않으나 가끔 술자리에 함께했던 기억으로는 꽤 멋진 분이셨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손 또한 크셨다. 술도 잘 사주시고 부인을 향한 애틋한 눈빛에 보글보글 사랑이 피어나던, 이 시대 최고의 남편감이라 말할 수 있는 분이셨다.

가끔 모임이 있어 만났는데 부인께서 집에 일이 있어 가보셔야 한다고 먼저 일어나셨다. 남편 분 때문이라고 했다. 그분이 어떤 증상을 가지셨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집안 사정이기 때문에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가끔 증상을 일으키셨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약과 약간의 보살핌이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닭살스런 삶을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 역시 가끔인지, 자주일지 모를 증상들로 인해 오랜 기간 입원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도 장애가 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계단이 있으면 가지 못한다. 보여지는 장애, 이것으로 인해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었다. 갈 수 있는 곳이 왜 이리 없는지, 사람들은 왜 낯선 시선으로 보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정신장애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잘 모를 뿐, 나쁜 부류는 아니다. 받아들일 수 있다. 단지 잘 모르는 부분들에 대한 두려움은 혐오를 낳기도 한다. 정신장애인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단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는 카메라 가게에 갔었던 적이 있다. 자주 가서 앞에 있는 입간판의 남자 배우가 멋있다는 둥, 카메라가 사고 싶은데 어떤 것을 사면 좋으냐는 둥, 들어가서 볼 수는 없겠느냐는 둥 주인이나 점원과 마주쳤다. 그러고는 입간판의 남자배우를 얻어냈다.

아마 계약이 끝나서 버려야 하는데 가져가겠느냐고 먼저 물어봤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카메라를 꽤 긴 기간의 할부로 사 버렸다. 어느 날인가 나무로 된 경사로가 생겼다. 감사하다며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갔었다. 이제 그 가게는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들 역시 고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실상은 두려움이다.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전에 일하던 센터의 자립생활주택에 어느 날 여자 한 분이 들어오셨다. 정신장애가 있다고 하는데 먹는 약이 많고 다른 질병도 같이 갖고 있었다.

거주시설에 어릴 때부터 살아서 이 분이 언제부터, 왜 정신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언어장애가 있어 기분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손톱으로 얼굴을 후벼 파는 등의 자해행동도 있었다. 도벽도 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고 어떠한 지원으로도 이 증상들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지금도 가끔 고민이 된다. 쓸데없는 고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마음이 쓰여서이다.

사실 그 마음쓰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가끔 시시때때로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한다. 부모님께도 한 달에 한 번 전화를 할까 말까인데 가끔 보고 싶다. 전화를 하면 “이XX 선생님이다.” 그렇게 반가워하며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길게 하지는 않지만 어떨지 짐작이 든다.

이때 잘 물어봐야 한다. 아니면 당황한다. 정신장애인들에게는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을 통해 증상들이 조금씩 나아진다. 웃어야 할 상황에 웃을 수 있고 눈물을 흘려야 할 상황에 아주 조금씩 변화를 보여준다. 조심해야 할 증상들이라면 우리가 좀 더 조심을 하고 이들을 대하면 된다. 이 분의 도벽 역시 일정 부분의 억눌림으로 인해 생겨난 증상들이었다. 어릴 때 필요한 것들을 사고 싶고, 사 달라 하고 싶은데 의지할 사람이 없어 스스로 해결해야 했었기에 생겨난 버릇이다.

현재 하고 있는 공부들을 이 분으로 인해 시작하게 되었다. 장애를 이유로 4년도 아닌 40년을 거주시설에서 살았다. 생각을 표현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삶에 도움이 되고자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분의 변화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분을 둘러싼 환경 즉, 우리가 이 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피해에 대한 두려움, 모르는 부분에 대한 혐오, 이런 것들에 대한 개선 없이 이 분의 지역사회 내 완전한 통합은 없을 것이다. 전문가는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곧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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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주 칼럼니스트 현재 삼육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장애 전반, 발달장애 지원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장애인 당사자로 당사자 지원에서, 일상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느꼈던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체장애인으로 보여지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 일상생활 자체가 글감이 될 수 있어 나는 좋은 칼럼니스트의 조건을 갖고 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매개로 생각하고 지나다니다 본 것들에 대해, 들은 것, 경험한 것들에 대해 쓴다. 전동휠체어 위에서의 일상, 지체장애인으로의 삶에 대해 꿈틀꿈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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