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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있고 여기에는 없다

장애가 일상을 집어삼키는 사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2-27 15:02:20
교사와 학생이 구분이 되지 않는 자유로운 표정과 몸짓이 곱다. ⓒ김주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교사와 학생이 구분이 되지 않는 자유로운 표정과 몸짓이 곱다. ⓒ김주희
코로나19
여기저기서 난리도 아니다.
휴교령이 떨어진 후 소보사 대안학교도 개학을 연기하게 되었다.
개학이 미뤄진다는 소식을 전하자 아이들 모두가 아쉬움을 연발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학교를 쉬면 좋아한다.
모두가 방학을 간절히 기다리고, 또 가끔 있는 공휴일에 환호하지 않던가?
그런데 소보사 아이들은 왜 이렇게 학교를 오고 싶어하는 걸까?
얼마나 학교를 좋아하는지, 간혹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에게 반 협박조로 “너 자꾸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전학시킨다!”라고 말하면 효과가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이들이 소보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곳이 좋은 ‘학교’라서가 아니다. 사실 농학생들이 외롭고 힘든 것 - 더 엄밀히 말하면 자신들이 힘들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 은 그만큼 그들이 속한 곳(학교만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청인중심, 음성중심의 모든 사회)에서 그들을 ‘정상’으로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수어는 언어다’라는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농사회에서 외쳐왔는가?
이제 한국수화언어법까지 생긴 마당에 더 이상 수어가 언어라는 것은 그만 외쳐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어는 언어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특히 수어를 사용하는 농아동과 농청소년들은 늘 외롭고 ‘비정상’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소보사에 들어서는 순간.
이 작고 소박한 공동체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모두 ‘정상’이다.

아이들과 교사가 한 답변들. ⓒ김주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아이들과 교사가 한 답변들. ⓒ김주희
아이들은 소보사가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무엇이 우리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하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보사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질문은 두 가지.

하나. 거기에는 없고 소보사에는 있는 것은?
둘. 거기에는 있고 소보사에는 없는 것은?

거기가 어딘지는 각자 다 해석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소보사가 아닌 다른 학교일 수도 있고, 그들이 농인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부모가 그들을 안고 데려간 병원일 수도 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가족일 수도 있고, 또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청사회의 불특정 다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학생들이 경험한 사회는 대부분 학교와 가정, 치료실 정도다 보니 대부분 아이들은 그곳들을 떠올리며 답을 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물리적인 환경이었다.

소보사에는 운동장이 없어요!
전에 다니던 농학교에는 운동장이 엄청 컸어요!
교실도 엄청 많고 큰데 소보사는 방이 세개뿐이예요.

이때까지는 하하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분명 웃으며 이야기는 나눴지만 마냥 하하거릴 수 만은 없는 것들이었다.

언어치료실이요!
학교 안에도 학교 밖에도 언어치료실이 많아요.
구화요! 말(음성언어)이요!


언어치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매번 글을 쓸 때마다 이런 해명을 하는 것이 조금 슬프긴 하지만) 하지만 농청소년들이 매일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는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치료의 영역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어떤 유형의 장애인으로 불릴 필요가 없는 일상을 가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가는 언어치료 시간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자신을 ‘못’듣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러한 시간이 계속된다면? 1년에 명절에나 만날 수 있는 친척들이 세뱃돈을 주기 전에 “너 요즘에 발음이 안좋아졌더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시 한번 더 말해보렴”이라고 하는 말은 과연 덕담인가 악담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언어치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료실 안에서만 있어야할 것이지,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누군가와의 소소한 소통 중에도 내내 ‘언어치료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면... 도대체 농인들은 어느 곳에서 <청각장애인>이 아닌 그저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청인이든 농인이든 우리가 나의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는 곳들은 참 많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청각2급’ 따위로 불려지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장애가 일상을 삼켜버린다. 너무 슬픈 일이다.

농청소년이 농아동들에게 수어로 책을 읽어주고 있다. ⓒ김주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농청소년이 농아동들에게 수어로 책을 읽어주고 있다. ⓒ김주희
청인이 들을 수 있는 것은 날적부터 어떠한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청인은 태어날때부터 듣게 태어났다. 그래서 청인은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듣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청인이 다수이다보니 청인들은 듣는 것을 정상의 기준으로 삼아버렸다. 그래서 모든 이들은 다 들어야 한다는 전제를 만들고, 그 전제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신념이 되기도 하였다.

청력이 권력인 사회.
날 때부터 누군가는 가졌던 그것이 어떻게 권력이 될 수 있었을까?
권력은 누군가가 부여해야 생기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권력을 누가 준 것일까?
대답하지 않고 싶다. 대답하면 눈물이 나고 화가 날 것 같아서이다.

음모론이 아니다. 이는 누가 누군가를 억압하고자 일부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사랑해서, 이것이 최선이라서, 더 잘 살아보게 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곳이 있다. 바로 ‘가정’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농자녀에게 언어치료를 시키고 인공와우 수술을 하도록 할 때 이는 분명히 선한 마음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부모님들을 '잘 듣지 못하면 큰일난다!' 라고 믿도록 한 이들은 누구인가? 그러한 마음과 행동들을 강화시킨 환경은 도대체 무엇인가?

청인들이 거저 받은 그 ‘청력’이 능력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이 사회. 귀로 소리를 듣는것만이 정상이며 기준인 이 사회. 이 나라. 이 커다란 집단을 어찌 이겨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똑같아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모두가 다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듣고 말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다수라서, 또 그것이 일반적이라서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다수가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다.
또한 그것은 그저 다수가 불편해서 소수에게 감내하라고 내던져진 불가능한 미션일뿐이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이 나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다 다르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 중 하나가 나의 장애일 뿐이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은.
기똥차게 잘 듣고 잘 말한다.
매일같이 어찌나 잘듣고 잘 말하는지.... 눈이 멍멍해질 정도다.
이렇게 수다스러운 아이들을 왜 ‘침묵’의 아이들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거기에는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필요없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고 자유롭다.

우리는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잘 보고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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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주희 (hand-s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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