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자폐성 자조모임 estas 메일에 재미 교포라고 하는 분이 우리와의 만남을 제안한 내용이 왔다고 조정자가 회원들에게 연락했다. 현재 시카고 현지 자조모임과 유사한 자폐인 활동가 커뮤니티와 교류 중이고,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참에 estas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고 싶으며 이참에 협업을 구상하고 싶다는 것이 메일 내용이었다.

한국의 장애운동 방향에 대해 알리고 미국 내 자폐 조직인 ASAN과의 협력 계기가 되는 좋은 기회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이 회원들 사이에서 나와 조정자는 교포분 제안을 수락했다.

설 지난 후 만나자는 재미 교포분의 답신을 전달받은 조정자는 나를 포함한 회원들의 의견을 묻고서 재미교포와의 간담회 일정을 2월 8일로 잡았다. 시간이 지나 2월 8일 오후, 신촌 시간공방 세미나실에서 회원들과 재미 교포분이 만나 자기소개를 하고 난 후 간담회를 시작했다.

먼저 조정자가 estas 모임의 활동 및 걸어온 길, 정신과 규칙 등을 소개하고 나서 윤은호 회원이 한국 자폐인의 인권 현실을 설명했다. 미등록 자폐 당사자의 열악한 현실, 자폐성 장애인 관련 정책이 빠진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사람들의 자폐 인식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인권 현실 설명 중간중간에 조정자는 재미 교포분이 회원의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끔 보충 설명하는 노력을 했다. 나도 아는 내용이 있으면 상황을 봐가며 그분에게 설명했다. 교포분은 들으면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1시간 반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잠깐 휴식한 후 미국의 자폐 인권 현실이 궁금한 나머지 회원들은 교포분에게 1시간 동안 질문하고 대화하며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나갔다. 대화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장애운동의 복잡성과 자폐인 커뮤니티 내의 심각한 인종주의

미국은 장애운동이 인종, 젠더 등으로 인해 조금은 복잡하고 분열 양상을 보인다. 자폐인이 백인일 경우 비백인인 경우보다 교육, 고용 등에서의 지원을 더 많이 받는 등 부의 불평등, 계급 차별이 발생하는 식으로 자폐인 커뮤니티 내의 인종주의가 심각하다. 비백인 자폐단체는 없지만 자조모임은 있다.

장애계에서 정신적 장애인의 열악한 입지

장애계 내의 리더십 구조에서 지체장애인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지적장애인, 자폐인 등 정신적 장애인은 입지가 열악하다. 장애계 내에서도 자폐계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자폐계를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NCIL(전미자립생활협의회) 로고. ⓒNCIL

한 예로 장애인단체인 전미자립생활협의회(National Council on Independent Living, NCIL)이라는 곳에서 컨퍼런스를 매년 개최하고, 국회의사당에 가서 민주당, 공화당 대표자들을 만나 장애인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고 한다.

그런데 컨퍼런스에서 얘기하는 도중 신체장애인이 자폐계에 대해 단순 비하 이상 수준으로 발언했고 그게 녹음까지 되었다고 한다. 녹음된 건 다 퍼져서 미국 사회에 문제가 됐다. 미국 사회의 자폐성 장애인이 얼마나 차별받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자폐성 장애인 인권침해와 전기충격요법

미국 자폐성 장애인의 인권침해는 심각하다. 한 예로 자폐 청소년들의 경우 학교에서 여러 번 거부되거나 소년원, 감옥 등에 수감 되었다 다시 나와서 학교로 들어갔다 받아주지 않아 나중에는 자폐인 행동교정 목적으로 전기충격요법을 쓰는 저지 로텐버그 센터(JRC) 같은 곳으로 가게 되는 실정이다. 참고로 JRC는 응용행동분석(ABA)중에 포함된 혐오자극을 사용하는 교육기관이다.

한편 ABA와 관련해 estas의 공식 입장은 어떤지 교포분이 질문했더니 회원들은 ABA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공식 입장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회원들 개개인별로는 ABA가 행동교정과 관계있기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자폐계가 ABA(응용행동분석)에 대해 강력반대하는 모습을 상징한 그림(좌측), ABA에 반대하는 미국 자폐당사자 시위모습(우측). ⓒReward and Consent blog

사법 지원에서 장애 차별적임

자폐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경찰 수사단계에서 신뢰관계인, 진술조력인 등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잘 되어있지 않다. 미국 사법체계가 장애 차별적이고, 장애인권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사법 지원받는 게 힘들다.

이외에도 예전엔 미국에 자폐인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고, 트럼프 행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반복지 정책을 하고 있다는 내용 등에 이르기까지 대화가 오고 갔다.

대화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었다. 먼저 정신적 장애인 입지와 관련해 미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체장애인들이 장애운동을 주도하고 자폐장애 등 정신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입지가 많이 열악한 게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체장애인 입장이 많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에 대한 전면개편을 요구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사법 지원의 경우도 미국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우리나라도 경찰 수사단계에서는 신뢰관계인, 진술조력인 동석도 되지 않은 채 자폐인 등에게 수사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단계에서 형량을 많이 받게 되는 등의 억울함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ABA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충격요법 대신 행동교정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행동교정으로 자폐를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행동교정을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소통단계까지 가는 건 아니고, 더군다나 자폐 장애는 고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자폐성 장애인의 인권이 열악한 현실 속에서 자폐인들끼리의 연대는 물론 지적장애, 정신장애 등 정신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과의 연대까지 강력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정신적 장애인들까지도 같이 강하게 연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장애 특성은 다를지 몰라도 사람들의 심한 혐오와 비하에 시달리는 거나 낮은 고용률과 소득, 그리고 시설(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등의 자유권 박탈 등 차별을 겪는 공통분모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하게 연대해야 장애계가 정신적 장애인을 차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차별이 심한 세상에 저항해 좋은 세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자양분이 만들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자폐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들의 목소리까지 함께 공감하고 나아가는 리더십 자질이 나를 포함해 estas회원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연대 리더십은 나나 estas 회원 모두 다 많이 부족하고 걸음마 단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년 5개월 전, 피플퍼스트와의 간담회 직후 사진. ⓒestas

최근에 피플퍼스트와 연대하기 위해 2년 반 전에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연대는 어렵다고 피플퍼스트 쪽에서 연락이 왔었다. 말을 너무 어렵게 하고 우리와 입장 차가 많이 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리가 말을 조금만 더 쉽게 하고 입장 차는 있더라도 공감하는 마음과 능력을 키우는 등 리더 자질을 갖추려 부단히 노력한다면 아직은 아니지만 후에는 같이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미국 교포분과의 간담회를 통해 ASAN 등의 국제 자폐단체 및 자조모임과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회원들 사이에서 나왔고 교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리더십 자질을 갖추려고 나, estas회원들을 포함해 자폐인들이 힘쓰고 간담회와 같은 기회를 자주 가져 국내외로 자폐인뿐만 아니라 정신적 장애인들과 같이 강력하게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후에는 정신적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2월 8일 재미교포와의 간담회 종료 직후 사진. ⓒe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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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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