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복지와 권리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흔히 사람들은 주장한다. 시혜와 동정이 완전히 권리와 복지로 대체가 가능한 것인가? 시혜와 동정은 틀렸고 복지와 권리는 맞는 것인가? 아니면 시혜와 동정은 긍정적인 면은 있으나 부정적인 면도 있어 적절하지는 않고 복지와 권리로 발전해 나가야 할 문제인가?

시혜는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이고, 동정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풂을 의미한다. 도움이나 은혜가 나쁘거나 불쾌한 일은 아니다. 타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거나 가엾게 여김도 온정의 손길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도 칭찬할 일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은혜를 베풀지 않거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잘못이다. 그리고 남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시혜와 동정이 없으면 그 사회는 비정하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남을 불쌍하게 여겨 도와주는 것을 자선이라 한다. 우리는 남을 도와주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인간됨의 기준으로 여기고 있다.

종교에서도 자비나 선행, 사랑을 이야기한다. 자비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그렇게 여겨서 베푸는 혜택을 말한다. 사랑은 아끼고 위하여 귀하게 여김을 말한다. 선행은 좋은 일이고 장려하고 칭찬할 일이다. 그리고 사랑은 인류의 최고의 정신이다. 자비 역시 사랑과 유사한 의미로서 사랑한다면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실천을 강조한다.

근대철학에서 사회계약설이 있다. 그 전의 중세시대에는 국민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도록 강요받아왔다. 그렇다고 군주는 국민을 위하지 않고 소모품처럼 사용한 것은 아니다. 군주는 덕목에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사회계약설은 모든 인간은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와 사회와의 계약에 의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임하였으므로, 국가와 사회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계약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시민은 저항하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즉 국민의 국가를 위한 봉사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위한 봉사를 해야 함을 뜻한다. 헌법에 명시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도 이 사회계약설에 의한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국민이 국가에 위임한 것을 국가가 베푼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고, 감사할 이유도 없으며, 은혜에 감사할 이유도 없다. 국가의 복지 서비스에 대하여 시혜라고 여기거나 기본적인 삶을 위해 주어지는 것을 보호나 은혜라고 여길 필요도 없다.

다만 자신이 국가에 기여한 것보다 혜택을 많이 볼 경우라면, 누군가가 낸 세금이 나에게 사용된 것이므로 그 결과는 누군가의 봉사로 인한 것이므로 재분배가 이루어지도록 기여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당당한 것은 좋으나 건방진 것은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공무원 중에는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자 노력하거나 그 혜택이 너무 적다며 불만을 말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모른다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회에 폐를 끼치는 자로 취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위임받은 것을 행사하는 사람이 은혜에 감사함을 요구하거나 감사할 줄 모른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재분배를 위해 기여한 사람이 사회적 책무를 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스스로 노력하여 가지지 않고 모두가 국가에서 받아가기만을 원한다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고, 재분배를 할 재원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택은 권리이지만 그 혜택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노력할 책무가 시민에게 있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도 기본적 삶을 누릴 권리는 부여하지만, 한번 수급자가 되고 나면 그 혜택을 누리려고 할 수 있는 탈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안주해 버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 줄어들 것이고, 책무를 해야 할 사람이 권리만 찾는 꼴이 될 것이다. 정의는 몫이 없는 자에게 몫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몫을 얻을 수 있다며 자기 몫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니다.

권리보다 책무가 강조되어야 하고, 그 책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감시를 해야 하며, 권리가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수혜자는 권리라고 하여 너무나 당당하게 주장만 하고 당연하게 여기면서 고마운 마음이 전혀 없다면, 기여자는 상당히 억울해할 것이다.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는 감사를 요구할 수 없으나 기여자는 최소한의 감사한 마음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권리는 필요하다.

국가 권력이나 복지 서비스에 대하여는 은혜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으니 시혜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고, 더구나 동정이란 말은 맞지 않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여 가엾게 여겨 베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서비스의 제공을 가엾게 여겨 시행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면 이는 당당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고, 국가나 사회에 대하여 시혜와 동정적 조치란 시각을 개선해야 함을 운동해야 할 것이다.

복지 서비스 수급자에게 고분고분하기를 요구하거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도록 요구할 수는 없으나, 지나치게 떼를 쓰거나 계약인 법과 제도를 벗어난 요구를 하거나 행정가를 함부로 대한다면 수혜자에 대한 인식은 나빠질 것이고, 이는 권리가 아니라 오히려 동정이나 시혜적 시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즉 과도한 권리주장은 시혜를 구축할 수 있다. 과도한 복지는 경제적 측면에서 수입과 지출 능력에 맞는가의 문제이지 과도하다는 척도로 말할 것은 아니다.

국가가 아닌 사회나 개인적 도움은 권리나 복지로 패러다임이 발전할 수 있을까? 여기서 사회란 기업이나 단체 등의 지원을 말한다. 지역사회의 재원 중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그 외의 지원은 개인적 지원이 있을 수 있다. 종교적 문제가 개인에게만 적용되고 국가나 사회 경영에 적용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만 종교적 이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나 자비, 동정과 시혜는 그 종교를 믿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물론 값싼 동정은 거부감을 일으키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비참함을 느끼게 하며 상처를 안겨줄 것이다. 기업이나 시민단체는 사회에 기여할 책무가 있기는 하지만 계약에 의한 것은 아니므로 복지나 권리라고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개인은 아무런 사회적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책무에서도 그 실천력에 강제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장애인단체들 중 시혜와 동정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도 바자회 등에서는 자선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자선 단체에서 후원한 기업에 지속적 지원을 얻고자 수혜자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편지를 쓰게 하는 행위는 사회적 책무를 동정의 수준으로 만들어버린다.

상대를 천하게 여기거나 받는 자로서 아랫사람 취급을 하거나, 측은해하는 것은 값싼 동정이지만, 처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가엾게 여기거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거나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것은 긍정적 행위로 동정과 시혜란 이름이라고 하여 비난하거나 배척할 일이 전혀 아니다.

자선 단체에서 수혜자를 더욱 불쌍한 것처럼 포장을 하거나 일회성 행사로 단체의 실적의 치적을 강조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고, 더욱 효과적인 지원 방안은 연구하고 평가와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야 할 것이다.

“당장 추운 겨울 연탄 한 장이 없어요”, “당신의 한 잔 커피면 누군가는 한 달 생활비예요”, “단돈 30만원이면 누군가의 눈을 뜨게 하여 빛을 줄 수 있어요” 등은 과장된 구걸 행위이다. 백내장 수술이나 각막이식을 마치 빛을 주는 것처럼 표현하거나 개안수술이라고 과장하는 행위 등은 자선이 구걸 사업이 되게 만든다.

동정과 시혜가 나빠서가 아니라 국가에게 위임한 권력 측면에서 적절한 표현이 아니어서 고쳐야 하고, 계약의 실천에서 그러한 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순수하고 거룩한 동정과 시혜는 존중되고 장려되며 수혜자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초보 운전자가 거리에서 양보를 받으면 자신이 숙련된 후 다른 초보자를 이해하고 양보를 할 수 있듯이, 고마운 마음은 필요하다. 감사한 마음이 저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권리를 생떼로 쟁취하거나 은혜를 고마워하지 않으면서 동정은 싫다고 말하는 것은 삐뚤어진 마음이 아닐까?

돕는 사회가 나쁘지 않듯이 동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서비스가 도움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도움이 비천한 것처럼 배척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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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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