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어지럼증이 심해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본래 빈혈기가 있어서 한번씩 핑 돌기는 했지만 이번 경우는 한번씩 핑이 아니라 그냥 계속 세상이 빙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하루 이틀 잘 먹고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증상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이러다 사고 나겠다는 생각에 그제 서야 병원 갈 마음이 들었다. 빈혈이 심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내과에 가서 약을 처방 받으려고 했는데 필자의 증상을 들은 친정언니가 인터넷 검색을 하고선 이석증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비인후과에서 확인할 수 있단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병원 가는 게 두렵다. 게다가 질병에 대한 후유장애로 실명하게 되었으니 몸에 조금 이상한 낌새만 있어도 덜컥 겁부터 난다. 특히 대학병원에 가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인근 이비인후과에 이석증 검사에 대해 문의했을 때 "그 검사는 대학병원에 가야 합니다." 하고 말할까 봐 무서웠는데 동네 병원에서도 확인 가능하다니 일단 심각한 병은 아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접수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름이 호명되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 드리니 좌우 귀안을 살펴보시고서는 끝이다.

'이렇게 검사가 간단한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한마디 하신다.

"눈이...." 그래서 재빨리 대답했다.

"아, 전혀 못 보는 상태예요."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일단 약을 먹어보라며 처방전을 타이핑하신다. 병명이 뭔지 가타부타 말씀도 없고 그래서 필자가 먼저 물었다. "무슨 약인데요? 제가 이석증 맞나요?"

그제 서야 의사 선생님 난감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이석증 여부를 확인하려면 동공을 살펴봐야 하는데 그게 의미가 없으니 확인할 수가 없어요. 일단 이석증 치료약을 처방할 테니 그걸 먹어보고 차도가 있으면 다행이고 별 차도가 없으면 대학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네요."

진찰실을 나오는데 낄낄 웃음이 나왔다. 이석증 검사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줄 몰랐던 필자와 필자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간호사와의 대화 그리고 당황해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석증 검사는 가능한데 동공으로 확인하는 거라서 그래서 난 확인이 안되네 하하"

이 상황에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정확하게 알려면 대학병원으로 가면 되겠지만 필자는 그냥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향했다.

'동공으로 확인하기 힘들다니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괜찮아지면 이석증이고 효과가 없으면 이석증이 아니다. 음, 간단하네.'

그래서 지금 필자는 몸소 임상체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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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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