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등기가 왔다. 구청에서 발송된 것이었다. 내용은 2020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시비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2019년 12월 중순에 장애인활동지원 시비를 신청하였는데 그 결과가 통지된 것이다.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필자처럼 중증의 장애가 있는 경우 활동 지원사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하지만 활동지원급여가 장애인 당사자가 필요한 만큼 무조건 지원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시간을 쪼개어 계획적으로 써야 한다.

필자가 중도 실명했을 때 딸아이는 고작 3개월이었다. 갑작스런 장애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기에 그 어린 핏덩이를 돌볼 수가 없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딸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필자가 용기를 갖고 딸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결심하고 시댁에 있던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 활동바우처사업을 알고 나서였다.

하루아침에 전맹이 된 필자는 당시 아무것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만 2살이 된 아이의 양육까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에 활동지원 급여는 항상 부족했다. 아이와 집안에만 틀어박혀 전전긍긍 생활하다 우연히 장애인활동지원 시비사업을 알게 되었고 신청 결과 지자체로부터 월 20시간을 더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20시간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겠지만 단 1시간도 아쉬운데 20시간은 우리 가정에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아이 병원이나 가까운 놀이터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항상 딸아이와 나를 챙겨야 했던 남편은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을 신경써야 해서 다니기 부담스러웠던 곳에도 지원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한 번씩 다녀올 수 있었다. 고작 20시간이지만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은 훨씬 높아졌고 가족 모두 심리적, 정서적으로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그 이후 매년 신청했지만 지원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20시간이 줄어들었지만 당시 대학에 재학 중이어서 10시간을 추가 지원받고 있었으며 딸아이도 초등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저럭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학교뿐 아니라 직장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중증 장애가 있는 필자는 강의를 진행하는데 필히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강의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활동지원시간을 바깥활동에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가사나 아이 양육에 할애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강사 취득까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강의를 들으시고 추천하는 분들이 있으셔서 어느 정도 강사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데 활동지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추가 지원받을 방법을 찾기 위해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장애인고용공단에 문의해 보았지만 마땅히 지원받을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매달릴 수 있는 건 활동지원 시비뿐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대상자 제외라니....

통지를 받고 구청 생활보장과로 전화를 했다. 대체 대상자 선정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결과에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당 담당자의 말을 빌리자면 선정기준의 1순위는 1인가구, 2순위는 건강상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3순위는 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4순위는 1~3순위 외 사유.

이 기준에 따르면 필자는 4순위 꼴찌였다. 그리고 담당자가 덧붙여 말하길 2020년 활동지원 시비 신청자 중 1인 가구가 많았고 예산이 적은 관계로 1인 가구 신청자 중에서도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었다. 행정직원이 무슨 죄가 있겠냐 만은 그래서 참으려고 했는데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기준이 왜 이래요?"

장애인활동바우처사업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주관이고 예산도 연금관리공단에서 집행한다. 그러나 활동지원시비사업은 예산을 지자체가 부담하여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는 활동종합조사표로 기본 지원 시간을 결정하고 가구상황에 따라 추가 지원시간을 지원한다. 그리고 지자체는 신청자에 한해서 위의 기준으로 대상자를 결정한다는 것인데 활동종합조사표도 그렇고 지원시비 선정기준도 그렇고 대체 이게 뭔가 싶다.

자, 그럼 활동지원 시비 선정기준에 대해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1순위 1인 가구의 경우 기본적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도 무조건 20시간을 추가 지원하고 있다. 결국 1인가구의 장애인은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20시간 그리고 지자체에서 활동시비 20시간을 받을 가능성도 많다는 것이다. 물론 1인 가구의 장애인분들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예산 집행 기관은 다르지만 어쨌든 서비스 이용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기준으로 서비스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특정 기준을 갖춘 분들에게는 중복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럼 필자처럼 서비스가 절실한 장애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까?

2순위 건강상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시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신청서 한 장만 작성하면 된다. 신청서에는 간략한 인적사항과 본인 서명란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신청 사유를 적는 란도 없고 어떤 증빙서류를 첨부하라는 직원의 안내도 없다. 그럼 대체 통원치료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하는지....

3순위 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

기초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은 가계소득이 일정 기준 미만인 가구를 말한다. 그래서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는 활동지원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감면해 주거나 소정의 일정 금액만 부과한다. 이는 충분히 납득이 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자체 활동지원 시비에서 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부과한 이유는 뭘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서비스 제공에 우선순위를 부과한 것은 아닌지....

복지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기준과 시행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정함에 있어 서비스 유관기관 및 장애인 당사자들의 실제 어려움을 확인하고 효율적으로 재원을 사용함으로써 복지 속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까지 챙길 수 있는 촘촘한 서비스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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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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