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사 대안학교의 겨울 풍경. 방3개가 전부인 작은 단독주택이다. ⓒ김주희

소리.

소리는 공기를 타고 우리들의 귀를 울린다. 어떠한 소리는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으로 남기도 하고, 어떠한 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이 되기도 한다.

언어.

우리는 그 수많은 소리들을 듣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의미를 가지게 된 소리들은 언어가 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의 대부분은 사실 언제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이 모여 있는 그곳에는 늘 ‘언어’가 있어왔다.

청각장애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 언어가 없는 사람들. 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의 내린다. 그런데 정작 ‘농인’들은 그게 아니란다. 그럼 무엇이라 정의 내려야 할까? 농인에 대한 정의를 구구절절 내리기 시작하면 첫 번째 칼럼이 너무 지루해질 것 같아서 그건 좀 나중으로 미뤄두려고 한다. 대신 스무고개 하듯, 숨은그림찾기 하듯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는 2020년 올해로 14살이 된 비영리단체이다. 2006년부터 다양한 모양으로 농청소년들과 함께 했지만, 2017년부터는 ‘반짝반짝 공동육아 어린이집’ 그리고 ‘봄(see & spring) 배움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대안학교를 열었다.

우이동 북한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집에서 10명 정도의 농아기, 어린이들, 농청소년들이 함께 수어로 놀며 배우고 있다. 그런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이 질문들 속에서 내가 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찾아봐 주시길 여러분들께 부탁드린다. 숨겨진 그림을 찾는 것은 마치 보물찾기와도 같아서 늘 즐겁기 마련이니, 마침내 찾은 보물들이 여러분에게도 부디 즐거움이길 기대해본다.

소보사를 향한 첫 번째 질문 _ 아니... 시설도 좋고 지원도 잘 받는 특수학교가 저렇게 많은데 왜 굳이 이런 곳에 대안학교를 세워요?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 학교를 세운 걸까? 지원도 받을 수 없는 비인가 대안학교, 월급이 보장되지 않는 이곳에, 아이들은 고작 10명인데 7명이나 되는 교사들은 왜 모인걸까?

농학생들은 초중고 12년 모든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받을 수 있다. 학비가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보사 대안학교는 월 교육비를 내야 한다. 소보사 대안학교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도대체 왜 운동장도 없고 급식실도 없으며 방 3개에 화장실 1개, 작은 앞마당과 뒷마당이 전부인 이곳에(....헥헥...) 굳이 돈까지 내고서 아이들을 보낸 걸까?

그리고 소보사의 아이들은. 친구도 별로 없고 설거지도 청소도 직접 다 해야 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둘레길 산책을 하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에 왜 온 걸까?

소보사 대안학교의 유치부인 '반짝반짝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이 수어로 읽어주는 책이야기에 모두 집중하고 있다. ⓒ김주희

소보사를 향한 두 번째 질문 _ 수어로만 가르친다고요? 말이랑 동시에 하는 것도 아니고요? 수어만요? 그걸로 아이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이런 걸 다 가르칠 수 있나요? 수어는 없는 단어도 많을 텐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소보사는 정말로 아이들을 수어로만 가르칠 수 있는 걸까? 수학의 수많은 공식은? 철학적인 개념들은? 이게 다 수어로만 전달될 수 있다고? 진짜? 말이랑 동시에 하지 않으면 조사는 어떻게하고? 그럼 애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워? 끝없는 질문이 쏟아진다.

소보사 대안학교의 교사들은 대부분 소보사 공부방 출신들이다. 소보사에서 수어로 공부한 농학생들이 대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면서 소보사의 교사가 된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대학교 4년 내내 수어통역을 받으며 공부를 마쳤다.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교사 역시 수어통역을 통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구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농교사들은 (구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수어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토론은? 발표는? 논문은? 그냥 대충해서 졸업한 거 아닐까?

소보사를 향한 세 번째 질문_ 아이들이 수어만 쓰게 되면... 나중에 일반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나요? 모두가 수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은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듣고 말을 할 수 있어야... 그래야 사람노릇 하지 않겠어요?

한국수어언어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농인들은 수어가 언어임을 설득하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수어가 언어라는 것에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나마) 인정을 한다. 하지만 일반사회에서는 수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수어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어가 언어는 맞지만 수어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수는 어쩔 수 없이 다수에 따라가야 하는 것일까? 그게 정의로운 사회인가? 우리는 무엇을 정의라고 말하는 걸까? 그 다수에 의한 편견으로 소수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소수에가 극복하라고 하는 것이 정말 ‘사람노릇’을 위한 걸까? 그저 소수이기에 다수에 맞춰야 하는 이것은 누구를 위한 걸까? 무엇을 위한 걸까?

이 밖에도 우리에게는 많은 질문들이 있다. 또 많은 공격들이 있다. 이것에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가까운 공원에서 숲놀이. ⓒ김주희

우리는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소리’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 관계, 배움, 깨달음, 자유, 사랑... 이러한 것들은 ‘소리’와 무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소리를 듣고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않지만, 우리와 여러분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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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칼럼니스트 우이동 북한산 아래 만 2살이 안된 농아기와 다 큰 농소년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김주희입니다. 소리를 듣기만 해본 이들에게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인 수어를 사용하며 농인답게 나답게 성장해가고 있는 농청소년들의 이야기. ‘정상’을 강요받으며 농정체성_농인으로서 나는 누구인지를 고민해온 농청년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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