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어느 시골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 받기 연습을 시켰다. 학생들 중 일부 남학생이 공을 제대로 받지 못하자, 선생님은 “너희들이 장애인이냐? 왜 공을 제대로 못 받는 거야”하고 꾸지람을 했다.

이를 지켜본 여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가 항의를 했다. 왜 공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장애인이라고 하느냐고 따졌다. 선생님은 “내가 그런 말을 했느냐? 무심결에 그런 말을 했나 보구나!”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한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남학생들이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남학생들을 찾아가 조금 전에 공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장애인이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남학생들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평소에 자주 듣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 정도는 남자답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학생들은 그리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선생님의 돌연한 사과에 겸연쩍어했다.

선생님은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이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니 내가 사과한 것으로 되었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어표현에서 당사자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사과를 하여야 하는지 판단기준이 되는 것처럼 이 문제도 남학생들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니 안심이 되는 듯했다.

그러자 여학생들이 “선생님 그게 아니잖아요?”하며 다시 항의를 했다. 선생님은 “사과를 했고, 남학생들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는데 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여학생들은 선생님에게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남학생들이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져서 남학생들에게 사과를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장애인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으니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공을 잘 다루지 못하면 왜 잘 하지 못하느냐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능력의 부족을 장애인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여학생들은 꼬집어 말했다.

체육 선생님은 임시로 온 선생님이었다. 전에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병가를 내어 기간제로 오신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으로서는 초년생이고, 장애인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받은 바 있다.

장애는 다양성이고, 능력의 부족이 아니며, 필요한 욕구를 충족하는 사회가 되어 포용하면 장애는 사라진다고 배웠다. 장애인도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어떠한 편견도 가지면 안 된다고 배웠다. 누구나 귀한 존재라고 배웠다.

선생님은 여학생들의 깜찍한 반란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평소 자신이 무의식중에 사용하던 장애인이란 용어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여학생들이 한 발칙한 항의가 너무나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귀엽기도 하여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의 효과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여학생들은 평소에 장애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을 장애 인식 개선 교육에서는 다시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이 옳구나 하고 재확인을 한 것이지, 교육의 덕으로 알게 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자신들의 생각에 대한 고무적이고 대견해 하는 필자의 물음에 자신들의 생각이 장애 인식 개선교육의 결과로 보는 것에 대해 다소 억울해하는 표정이었다. 정말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생각에 기성세대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이 부끄러웠다.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을 왜 선생님, 아니 우리 어른들은 편견을 가지고 장애인에게 상처를 주고 장애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이들의 올바른 생각과 장애인을 대신해 항의해 준 것에 대해 감탄스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쩌면 장애 인식 교육은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원래의 순수함과 누구나 알고 있으나 이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원래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떤 것이든 지식이 아니라 감수성이나 직관으로 이해해버리는 시골 아이들의 행동에 인권과 관련된 교육은 조기에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생각하기에 충분한 작은 사건이었다.

정말 맛있는 간식이라도 사 주고 싶은 멋진 여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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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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