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라는 말은 원래 없겠지만, “사람은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경험이 더 많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는다.”라는 지적을 정문정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하고 있다. 이 말, 100% 공감한다.

일을 하면서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느끼면 느낄수록 내 얕은 지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누가 봐도 늦은,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았음에도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데 일과 병행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나는 체력도 한참 후지다.

인생 고뇌인 것처럼 수강신청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정정 기간에 막차 타고 과목을 정정했다.

수업의 첫날, 기관에 행사가 있어 부득이하게 결석을 했다. 그다음 주, 수업 날. 아마 재학 기수 중 최고령 학생이 아닐까 싶은 어르신이 강의실에 앉아 계신다.

나이 오십에 힘들다며 툴툴 대며 다니고 있는 내게 부끄러움을 한 아름 선사하시는 저분은 어림잡아 칠십은 넘으셨으리라.

오오. 엄청 훌륭하신 분이 아니신가. 게다가 엄청난 학구열 까지.

주교재를 비롯 부교재까지 책을 3권이나 들고 다니시다니.

강의실. ⓒ Pixabay

수업이 시작!

어라. 교수와 말다툼이라니.

본인이 나이가 많은데 자기 말을 끊지 말라니.

나는 지정된 기관 방문일에 수업이 다 있으니 방문 수업은 못하겠다니.

교수권이 있으면 교습권도 있으니 강요하지 말라니.

수업 시간 내내 불편함을 만드신다. 게다가 말끝마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배려받아야 한다는 어필을 말 사이사이마다 조사처럼 쓰신다.

과거 뇌출혈로 쓰러지고 장애가 남으셨다는데 유심히 봐야 티가 날 정도로 경미한 수준이다.

본인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겪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상식 수준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수준이라서 옆에서 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한데 이분이 8주 내내 수업 시간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교수와 학생을 불편하게 만드셨다.

심지어 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교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지 않느냐며 너희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신이 대신 처리해준다는 오만까지 보이시며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교수나 학생들의 말에는 귀를 닫는다.

결국 9주 차에 교수가 교체됐다.

학생들은 당황했고 어르신은 으스댔다.

심지어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해맑다.

새롭게 바뀐 교수는 성적처리에 관한 부분을 협의하자고 했다.

부당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발표한 학생들의 발표를 본인이 보지 못했으니 발표 부분은 없던 걸로 하고 기말 시험으로 대체해도 되겠느냐고. 모두 동의했다. 딱 한 명만 빼고.

그분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인다.

자신은 이런 사항을 고려해 시험이 없는 과목을 선택했노라고 이렇게 교수 맘대로 평가 기준을 바꾸면 곤란하다며, 장애학생은 시험을 보려면 편의 보장을 위해 별도의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뤄야 하고 시험 시간도 1.5배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셨다.

“어르신 지체 장애는 시험시간 1.5배는 해당사항 없어요.”라는 내 말에 “학교 규정이 그렇다!”라며 호통을 치며 입을 막았다.

재빨리 수습하고자 교수가 시험장과 1.5배의 시간을 주고 배려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 때문에 그렇게 번거로워지면 소문이 나서 다른 교수들도 자신을 미워할 테니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교수도 학생도 모두 황당하고 어이없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교수는 어떻게 하고 싶느냐고 다시 물었다.

“시험을 보지 말고 리포트로 대체하면 어떻겠느냐?”

결국, 성적이야 어떻든 시험으로 쉽게 끝날 일이 몇 날 며칠 고생하게 돼버렸다.

나이 든다는 건 지혜로워진다는 거나 인격이 깊어진다거나 하는 일과는 분명 다른 의미다. 그냥 고집스럽고 무차별적이고 막돼먹게 늙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또 장애가 배려나 시혜에 있어 무슨 특권처럼 이용하는 장애인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럴 땐 괜히 부끄러움은 내 몫이 된달까.

어쨌거나 다음 학기는 이 분을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데.

어쩌나 싶다. 휴학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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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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