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미지. ⓒ픽사베이

아들은 태어날 때 한쪽 발이 만곡족(내반족)이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말도 못 한다. 병원을 이곳저곳 전전하며 치료를 해왔다. 신생아 때부터 깁스와 치료를 병행해 온 덕에 지금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넘어지기는 하지만 잘 뛰어다닌다.

매해 혹은 한 두해 거르기도 하지만 송파구 한강변에 있는 유명 병원을 십수 년 다니고 있다. 이번 진료는 두 해를 거르고 2주 전, 정기 검사와 함께 받았다. 진료할 때 아이가 디스크 증상이 보인다며 좀 자세히 보자는 의사의 말이 있던 터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아내는 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아들과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3시, 정신없이 일에 치이고 있을 때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진료가 끝났겠거니 싶어 물었다.

“어때?”

“통화 괜찮아?”

살짝 말끝이 떨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지만 너무 바빠서 “무지 바쁜데, 왜?”라고 대답해버렸다. 아내는 평소 같으면 방해하지 않으려 “알겠다”라며 서둘러 끊어 줄텐데 오늘은 끊지 못하는 걸 보니 뭔가 있구나 싶어 자세까지 고쳐 앉았다.

“왜? 검사 결과가 안 좋아? 심각하데?”

순간 심각하게 묻는 내 물음에 아내는 한 템포 쉬고 “나 화가 많이 났어!”라며 말을 이었다.

아내는 나와는 다르게 웬만해선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다. 누가 봐도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거나 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높은 수위의 짜증을 낼법한 상황에도 잘 참는다.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니고 보통은 그렇다.

이런 아내가 대놓고 화가 났다고 하니 진짜 속이 상했다는 거다.

내반족인 아들은 한쪽 발이 안 좋으니 전체적인 몸 균형이 틀어진다. 그런 자세로 단 1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팔딱거리니 의사 말마따나 허리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근전도와 다른 검사도 추가적으로 받았었다.

오늘은 그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간 거였는데 무슨 일로 아내는 화가 많이 났을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니, 글쎄 의사가 너무 건성으로 대답하네. 원래 그런 편이긴 했지만 이번엔 좀 심해. 자기가 디스크 소견이 보인다고 아이한테 그렇게 힘든 검사를 시켜놓고 검사가 제대로 안 됐다고 내년에 다시 하면 되니까 두고 보재. 애들은 크면서 좋아지기도 하니까 신경 쓰지 말래. 신경 안 써도 된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드래건처럼 숨도 안 쉬고 화를 쏟아 내는 아내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사의 틱틱거리는 태도를 알다 보니 보지 않고도 당시 상황이 짐작이 돼서 나 역시 화가 치밀었다.

“나는 듣기만 해도 열 받는데 당신은 화 많이 났겠다.”

“아, 글쎄 검사가 왜 잘 안 나왔냐고 물었더니 뭐라는지 알아? 애가 협조를 안 했데. 검사도 예약 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해 놓고, 그리고 검사하는 애(여의사)는 허리를 두 번이나 찔러대더니 ‘왜 안 되지?’라고 우왕좌왕하더니 전원을 안 켰다고 혼자 생쇼를 하더라.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머쓱해서 웃더라고. 결국 한 번 더 하자고 세 번이나 찌르면서 애를 잡아 놓고…. 뭐 애가 협조를 안 해? 나 참, 지 조작 미숙은 쏙 빼놓고 검사 차트에 애가 협조를 안 해서 검사가 제대로 안 됐다고 써놨더라고. 그래서 의사한테 애는 잘 참고 잘했다고 짜증 좀 냈더니 지가 검사한 게 아니니 자긴 잘 모른다고 내년에 보자는 거야. 아, 내가 정말 열 받아서.”

화도 잘 안 내는 사람이 전화기에 대고 울그락 불그락 하는 모습이 그려져 살짝 웃음도 날 지경이다.

“이런 썅! 내가 전화해서 지랄 좀 할까?”

“그리고 또 더 열 받는 게 뭔지 알아? 진료 볼 때 매번 발 엑스레이를 찍는데 이번엔 처방에 빠져 있길래 간호사한테 얘기하고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처방이 안 났으니 그때 와서 해도 된다고 괜찮으니까 그냥 가라는 거야. 그래서 당일 검사 신청하면 오래 걸리지 않냐고 확인해달라고 하니까. 안 해주고 짜증 내면서 버팅기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그냥 확인만 해주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의사한테 확인도 안 하고 ‘그렇게 원하시면 그냥 제가 해드릴게요. 됐죠?’ 이러면서 처방전을 주더라고. 그래서 아니 확인도 안 하고 그럼 어떡하냐고 했더니 괜찮데. 얼마나 화가 나는지. 10년이 넘게 병원을 다녔는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그럼 이참에 그냥 병원을 확 바꿀까?”

하다못해 동네 가게도 오랜 기간 얼굴을 봐 온 단골은 친숙함을 넘어 신뢰가 쌓이기 마련인데 병원 의사들은 환자와 소통을 넘어 신뢰를 쌓는 일보다 자신의 권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히포크라테스를 나불대지 않더라도 아픈 아이나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조금의 세심함과 따뜻함을 가슴에 장착하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권위는 덤이고.

물론 하루 종일 수술과 진료에 시달리는 의사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10분이 채 안 되는 진료 시간,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 시대니 하며 사라질 직업에 의사가 오르내리는 일에만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치료를 넘어 치유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의술만 높은 의사보다는 인성 높은 의사가 우리에겐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의사가 되기 위해 전투적으로 공부만 하다 보니 사람 살리는 기술만 배우고 사람 대하는 인성은 배울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안쓰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아무튼 오늘 아내의 분노에 가까운 억울함을 듣다 보니 의사라는 직업도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게 의대 가라고 노래를 부를 것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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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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