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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옆집 아저씨가 되어버린 아빠

예절만 강조하다 아들과 거리감…아빠 잃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8-19 14:29:40
이우경의 <나는 왜 나를 힘들게 할까>라는 책을 보면 '부모도 인정해 주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가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문장을 보면서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든가 "너는 왜 맨날 그 모양이니" 등의 말을 들으며 자랐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데 딱히 어떤 일을 저질러서 이런 말을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다만 문장 위에서 멈칫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여하튼 그랬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사실 나 스스로가 예절이라든지 인성이라든지가 출중하지 않다. 잘 안다. 오죽하면 목이 부러져 잘 걷지도 못하는 내게 친구가 "너 목 부러지더니 인간 됐다."라고 했을까.

그럼에도 아이들에게는 밥상머리 예절이라든지, 어른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해야 한다든지,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자거나 일어나거나 할 때 인사를 해야 한다는 등을 강요하다시피 하며 키운다.

거 '인사가 뭐라고'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사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데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아마 "아빠가 장애인이라서 애들 교육을 잘못시켰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자랄 때는(겉보기는 30대지만 실은 50대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늘 따라붙는 미사여구가 '애미, 애비없는 자식'이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시절이었다. 그땐 그랬다. 그래서일까 나는 집착에 가까운 '인간이 되는' 예절 교육을 시키는 편이다. 피해의식이라면 피해의식일지도.

병원에 입원한 아들. ⓒ정민권 에이블포토로 보기 병원에 입원한 아들. ⓒ정민권
아들이 아프다.

녀석이 태어날 때, 의사의 미숙한 대처로 온몸이 시퍼레지면서 CPR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곧바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지만 자칫 30대처럼 보이는 50대의 아빠를 못 볼 뻔했다.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인큐베이터를 집 삼아 꽤 오래 있어야 했었다. 아마 녀석이 병원 침대에 들어 누운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이지 싶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단 1초도 그냥 있질 않는 녀석이 웬일로 인사를 하러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불 꺼진 아이 방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하루 종일 시름시름 잠만 자고 있다고 한다. 수차례 토하기도 했다고 했다.

걱정스럽긴 했지만 워낙 팔딱팔딱한 아이라 그러려니 하고 식탁에 앉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연거푸 토하기만 했으니 배도 고프련만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엄마의 성화에 억지로 저녁상 앞에 앉은 녀석을 보니 낯빛이 좋지 않다.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몇 끼니 굶는다고 안 죽어.“

자상하게 한 말인데 이상하게 엄한 목소리다. 결국 한 술 뜨던 녀석이 입을 틀어막고 튀어 나가다 미처 화장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마루에 먹은 거에 몇 곱절이나 많은 양을 게워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앉아 있는 녀석. 아픈 게 자기 잘못도 아닌데 자꾸 아빠 눈치를 본다. 그동안 얼마나 엄하게만 굴었으면 아이가 저럴까 싶어 마음이 쓰인다.

잔병치레를 하지 않던 녀석이 두통을 호소하고 빈속을 게워내기만 하니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약을 먹고 지쳐 잠이 들었는지 까무러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잠든 녀석을 뒤로하고 이미 이른 새벽, 우리 부부도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부산한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6시. 출근 시간. 한데 평소 같으면 누워 있을 아내가 이미 나갈 채비를 다 마친 채 머리맡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당신 출근할 때 병원에 좀 내려줘. 애가 위액까지 토해. 녹색물이야"

부리나케 준비하고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가는 동안에도 두통과 속이 좋지 않다고 힘겨워하던 녀석이 차에서 내리며,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세요"도 아니고 "안녕히 가세요"라니. 오늘따라 녀석의 인사가 아빠가 아닌 옆집 아저씨에게 지키는 예절 같아 가슴에 날카롭게 박힌다. 그리고 어제 토하는 와중에 아빠의 눈치를 살피던 모습이 출근하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아들은 CT와 척추에 바늘까지 꼽는 검사를 마치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는 환자가 되어 입원했다. 그리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동안 아이의 빈방을 둘러보며 예절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기만 하는 아빠는 그저 엄격하고 어려운 옆집 아저씨가 돼버린 듯해서 속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깟 인사가 뭐고, 장애가 뭐라고 아이들과의 거리가 이토록 멀어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옆집 아저씨에서 아빠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아픈 아들이 내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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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정민권 (djanmo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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