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유일한 안락을 제공하는 침대. ⓒ Unsplash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 중학교 체육시간, 필기시험을 위해 형식적으로 가끔 있었던 교실 수업시간에 처음 듣고선, 얼마나 심드렁했던지. 그땐 어렸고,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체력이 좋았고, 그래서 그냥 별 생각도 없었고 와 닿지도 않아서 시험대비용으로만 외웠던.

서른셋의 나, 이 말을 다시, 그러나 반대로 곱씹어 본다. “안 건강한 신체에 안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곧 수긍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충분히 공감되는 얘기다. 삼십대의 나는 안 건강할 때 쳐지고 슬퍼진다. 아니 그 말로는 부족하다. 그냥 내 인생이 통째로 무너지는 기분이다.

내 아픔의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피곤하면 1차로 구내염과 혓바늘이 입안에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다. 평소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활동을 하다 보니 잠이 부족한 상태가 금요일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곧 입안에서 전쟁으로 번진다.

그때 만약 중간에 공휴일이 끼어 있거나 휴가를 내던지 해서 하루쯤 푹 쉬어주면 그래도 눈에 띄게 회복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쉽지 않고, 주말이나 되어서야 쉴 수 있으니 고통을 견디며 평일을 보내야 한다.

만약 이때가 봄, 가을 같은 환절기라면 떨어진 면역력을 가볍게 뚫고는 감기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평소 손도 잘 씻고, 잘 먹고, 게다가 영양제 같은 보조식품까지 잘 챙겨 먹어도 꼭 온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웬일로 감기가 안 오지?’라고 생각한 그 다음날 깜빡했다는 듯이 꼭 찾아온다.(항상 그놈의 입이 문제다.) 그렇게 찾아온 감기가 가볍게 지나가 주면 다행이고, 혹여나 편도선염이나 기관지염으로 영역을 넓히기라도 하면 최소 2주는 고생하게 된다.

여름과 겨울 같은 때에는 감기 대신 근육통이 말썽이다. 겨울엔 추운 기온 때문에 근육이 쉽게 경직된다. 자칫 잘못해서 잠을 잘못 자거나, 휠체어에 앉아 한 자세로 오래 일하면 금새 근육이 굳고, 그런 와중에 갑자기 힘을 쓰기라도 하면 삐끗해서 몇 주를 고생한다.

여름엔 더위와 습기가 한몫한다. 비가 자주 내리고 흐린 날씨가 지속돼도 근육에 통증이 온다. 그래서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달고 살다 보면, 결국 위염까지 겹친다. 최악이다.

최근에 또 2주간 아픈 상태가 지속되어 엄청 고생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심했던 월경통과 소위 PMS라 불리는 월경 전 증후군이 원인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정확하진 않다. 오전 8시부터 길게는 밤 11시 무렵까지 휠체어에 오래 앉아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척추측만증이 왔고, 그 덕에 안 그래도 약한 허리는 여성 질환에 훨씬 취약하다. 때문에 한 달에 길게는 보름, 짧게는 일주일을 항상 고통 속에 보낸다. 이번엔 그 고통이 하반신 전체 근육통으로 번졌다.

첫 일주일은 원인을 모른 채 가벼운 근육통으로 생각하고 약을 먹어댔다. 하지만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었고 건강했던 위장을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래서 그 다음주부턴 안 가던 한의원까지 드나들게 됐다.

하지만 그 또한 치료 직후엔 효과가 있다가 잠자리에 들면 소용이 없어졌다. 밤새 괴로워하다 보니 출근해서 일하는 낮시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생활의 균형이 깨지며 나는 점차 무너져갔다.

어느 날 밤이었다. 방에 불을 끄고, 평소 좋아하던 노래도 꺼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빛이나 소리 같은 자극에도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해서 짜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기분 나쁜 통증이 지속되는 내 하반신과 허리에 찜질팩을 대고 있는데 대뜸 우울한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너지는 건가. 평소 내 직업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딴 짓을 흘끗거리던 나였는데, 이젠 내 일을 감당하는 것도 버겁구나.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까. 적어도 가족이 함께 있다면 좀 괜찮지 않을까.’

무의식중에 갖고 있었던 일과 생활에 얽힌 불안감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어린아이 마냥 부모님 품에 안겨 징징대고 싶었다. 나이 들어 내 몸이 노쇄하는 것이 무서웠고 막막했다.

그러나, 나는 곧 알아챘다. 내가 아파서 그런다는 걸. 수없이 경험해온 아픔이 나에게 어떤 기분을 선사했는지 잘 안다. 내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며칠 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끔히 회복되어 가벼워진 몸을 느끼며 긍정을 되찾았다. 다시 활기차게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모임에 참석했다.

다시 밝게 웃고 농담을 던지는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의욕이 생겼다는 것은 회복의 가장 좋은 징조다. 얼마나 다행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번 앓았던 경험을 통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옳다는 사실을 몸소 알게 됐다. 어렸을 땐 너무 건강해서 몰랐던 말을 이제 깨달았다는 점에서 나이 듦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아 좀 씁쓸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두 가지 결심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첫째, 건강 관리를 게을리하지 말 것. 이젠 몸에 좋은 것을 신경써서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둘째, 건강할 때 최선을 다해 살 것. 직장생활도, 노는 것도 평소 열심히 해서 아플 때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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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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