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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서 ‘더위 먹는 남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7-04 14:38:26
나는 척수 장애인이다. 푸르다 못해 시퍼런 청춘이었던 21살에 목이 부러졌다. 경추를 지나는 신경 손상으로 다양한 장애가 생겼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노동인 운동 장애는 물론 이거니와 그중 참 피곤한 두 가지. 하나는 더위를 먹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못 참는 거다. 그것도 아주 잘. 그런데 오늘 그것들이 동시에 터졌다.

31도.
하루 종일 온다던 비는 안 오고 수은주만 엄청 올렸다. 쨍하지 않으면서 더럽게 습한 맑음.

이 와중에 복지관에서 담당하고 있는 업무로 외근을 나가야 했다. 휠체어를 20분가량 달려야 하는 곳. 사실 이렇게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리프트가 설치된 차량을 이용하지만 너무 복잡한 시장통 주변이라 주차가 난감할 게 뻔하다. 하여 도보 아니 휠체어로 가는 게 속 편하다.

한데 내 전동 휠체어는 15년은 족히 넘겨 이미 세상을 하직하고 남지만 복지관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숨이 깔딱거리면서도 힘을 내주고 있다.

그렇게 기특한 내 전동 휠체어가 열일 하며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섰다. 약속 장소 400m 전. 그늘도 없는 땡볕에 그것도 사람들의 온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도록 인도 한 복판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오 마이 갓!

녀석에게 다시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이것저것 만져보지만 장렬히 숨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인도 한 중앙에 휠체어에 앉아 길을 떡하니 막고 서 있으니 어지 부끄럽지 않을까.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척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 본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힐끔거리며 피해 지나기만 하지 누구 하나 도움이 필요한지 묻지 않는다. 전화도 있고 내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누구 하나라도 물어 봐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나저나 본론.
나는 목이 부러지고 나서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사우나에 들어가도 살이 벌겋게 익지 땀은 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런 날씨에 외부를 나돌아 다니다가는 십중팔구는 열사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마실 물도 없이 땡볕에 20분 넘게 있으니 슬슬 더위를 먹기 시작했다. 팔과 얼굴을 비롯해 피부가 뜨거워지고 그 열감으로 일순간에 코가 막힌다. 그 단계를 지나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콧물이 자꾸 나오기 시작한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누가 보면 초등학생 때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있어야 하는 아이처럼 코를 질질 흘린다. 엄마가 그랬는데 코보 쟁이라고.

어쨌거나 더럽게 자꾸 콧물이 나온다. 그리고 이 단계까지 지나면 호흡이 가빠지고 결국 혼절한다.

슬슬 불안해져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동 휠체어를 수동으로 변환해서 열기를 식힐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참을 나도 휠체어도 열기를 좀 떨어뜨렸다. 그리고 휠체어도 나도 소생됐다.

누군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다는 건 드러나게 위급할 때도 있지만 유심히 지켜봐야만 알 수 있는 상황도 있다. 게다가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여러 이유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말을 못 할 수도 본인의 위급을 알리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움이 감당이 안 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금의 관심을 갖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정도로는 헤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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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정민권 (djanmo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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