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봐?"

"당신도 그래?"

책을 읽고 있다가 앞에 앉아 있던 아내의 시선이 느껴져 물었더니느닷없고 뜬금없이 아내가 묻습니다.

"무슨 말이 그래?"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아내는 비 오는 날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맞으면 금세 흠뻑 젖을 정도의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외출했다가 마주친 여성 장애인이 있었답니다.

그 빗길에 그녀는 우산도 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짚어가며 걷고 있었고 남편이 장애인인지라 그냥 넘기지 못한 아내는 오지랖이 작동해서 슬그머니 그 옆으로 다가가서 말없이 우산을 함께 받쳐 주었답니다.

그런데 그녀는 버럭 짜증을 내며 "필요 없어요!"라며 손을 휘젓더랍니다. 놀라기도 하고 살짝 민망해지기도 한 아내는 변명 아닌 변명이라고 한 말이 고작

"제 남편도 장애인이에요. 남일 같지 않아서… 그냥 함께 가요."

였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날선 표정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가던 길을 돌아가 버렸다고 하면서 저도 누가 도와주려고 하면 기분이 나쁘냐고 묻는 거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인식개선교육에 나가거나 비장애인과의 소통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고 같다고 차별하지 않고 함께 살자고 하면서 아내가 겪은 일처럼 정작 누군가의 손길을 무조건 불편해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성장통은 어쩌면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야 할 정체성일지도 모릅니다.

수용과는 다른 이 정체성은 특이하거나 특별함처럼 구별되지 않는 '그' 자체로 존재가 되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다름으로 만들어지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 앞에 '장애'가 있어서 그렇다는 게 핑계가 아닌 그래서 도움을 받아 불편함이 해소된다면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법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법조인에게 몸이 아프면 의료인에게 사고가 나면 경찰이나 보험설계사에게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우산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혼자 모든 걸 해결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얼마나 피곤할까요?

장애인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모든 사람이 측은지심이 불끈 솟아 '저 사람은 불쌍하니 도와야 돼!'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분명 그렇겠죠? 제 생각이 오해가 아니길 바랍니다만 어쨌거나 스스로를 낮추거나 피해 의식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비장애인 역시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히어로처럼 불쑥 나타나 해결해 주려 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혹은 도움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웅은 스크린에서 활개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앞서 이렇게 한 번만 물어 주세요.

"도움이 필요하세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주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필요 없다면 정중하게 사양할 겁니다. 이렇게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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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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