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준의 뒤를 걷고 있는 혜진. ⓒ최선영

마른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그의 흔들거리는 걸음을 겨우 잡아주고 있었다.

그의 몸이 혹시라도 인도를 벗어나 차도로 기울어질까 봐 혜진은 그를 앞지르지 못하고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다 편의점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시작했다.

혜진의 방향이 틀어져 버렸다.

"별일 없겠지?"

혼잣말을 그의 등에 던지며 혜진은 모퉁이를 돌아 카페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응 왔어."

카페 주인 서희는 혜진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혜진이 오자 서희는 주문받아놓은 빵을 제시간에 만들어야겠다며 들어갔다. 혜진이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 내릴 준비를 하는데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

혜진의 입에서 인사 대신 작고 짧은 소리가 순간 튀어나왔다. 좀 전에 거리에서 비틀거리며 앞서가던 그였다.

커피 주문을 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그는 편의점에서 사온 숙취해소 음료만 들이키고는 주문한 커피는 마시지도 않았다. 커피는 자릿값이었나 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그의 바쁜 손놀림은 카톡이 울리자 멈췄다. 식어버린 커피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그는 카페를 나가버렸다.

테이블을 정리하기 위해 그가 앉았던 자리로 갔다. 그의 것으로 보이는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지갑을 보는 순간 혜진은 곧 그를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혜진은 조심스레 지갑을 펼쳐보았다. 운전면허증, 카드, 현금도 꽤 들어있었다.

"카드까지 있는데... 찾으러 오지 않는다고? 그때 술이 덜 깬 걸까? 이곳을 기억 못 할 만큼?"

다음날 혜진은 그의 지갑을 들고 카페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서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의 소식을 들었다.

지갑을 받아든 경찰관은 지갑을 열고 운전면허증을 보더니 다른 경찰을 불렀다. 초췌한 모습으로 지갑을 받아든 또 다른 경찰관은 말없이 지갑을 움켜쥐었다. 입술을 깨물고 고개 숙인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우를 만난 혜진. ⓒ최선영

돌아서 나오려는 혜진에게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지갑을 받아든 경찰은 그의 이란성 쌍둥이 형 시우였다.

시우의 동생인 시준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은 혜진이 일하는 카페였다. 시우가 그곳을 와보고 싶어 했다.

혜진의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날, 그의 비틀거림을 잡아주었더라면 그는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지금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혜진의 마음이 울퉁불퉁해졌다.

"그날, 제가 조금 더..."

"아니에요. 시준이는 아마 이곳에서 노트북에 마지막 인사를 남겼던 것 같아요."

혜진은 시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사람이 숙취해소 음료를 마셨던 것도, 톡을 보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던 것도.

"본인이 선택한 길이 맞나요?"

"그게 무슨..."

"아니, 그런 선택을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서요."

"네...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죠. 톡을 보기 전까지는.. 자살카페에 가입했었던 것 같아요. 그쪽에서 만난 멤버들의 톡이었어요. 밤새 술을 마시고 저를 찾아왔는데... 제가 출동을 나가고 없었어요... 아마 제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날 그들이 약속한 날짜였고요."

"이유가 뭐죠? 죄송해요... 힘드실 텐데..."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한 이후부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2년 전에 저희 곁을 떠나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아요."

"그날 뒤 모습이 무척 불안해 보였어요. 술에 취한 것 같은데 차도 쪽으로 몸이 기울어질 것 같아 위험해 보였거든요.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계속 뒤를 따랐는데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는 카페로 왔어요. 그런데 10분 정도 지나고 그분도 카페로 들어왔어요. 한 시간 동안 노트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남기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톡을 받고는 웃으며 나가시더라고요. 제가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해봤을 텐데..."

"아닙니다.. 제가 조금 더 마음을 썼어야 하는데..."

" 저도 오빠가 있는데 5년 전 회사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뺑소니 사고를 당했어요."

힘들어하는 시우를 토닥이며 혜진은 아무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시우에게 꺼내 보였다.

장애인이 되고 오빠는 무척 힘들어했다.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는 혜진의 아빠이자 엄마였다. 그런 든든한 오빠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었다. 혜진은 어떤 모습이든 살아서 곁에 있어주는 오빠가 고마웠다.

그런 혜진의 마음을 알았기에 힘들어하던 오빠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던 오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학창시절 이루고 싶었던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오빠가 그런 사고를 당한 이후 술에 취한 사람을 보면 늘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는 혜진의 말에 시준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혜진의 마음을 시우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혜진이 고마웠다. 시준을 그 누구도 잡아줄 수는 없었지만 시준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봐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시우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아픔 하나씩 안고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하면 그 상처가 덜 아프지 않을까요? 상처의 흔적은 남겠지만 위로는 될 것 같은데... 전 그렇거든요."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리던 시우가 3개월이 지나고 혜진에게 건넨 마음이다.

아프지만 함께라서 행복한 시우와 혜진. ⓒ최선영

아프지만 아름다운 봄이다. 그들에게 봄은 혼자가 아닌 함께라 아프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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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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