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수진과 승진 ⓒ최선영

"여보~ 여보~ 수진아~"

"왜?"

"같이 보자."

그는 혼자 tv를 보다 그녀를 부릅니다. 간절하게 그녀를 찾는 그의 부름에 그녀는 미소를 가득 담고 그의 옆에 앉았습니다.

"이 프로 너무 재미있어."

'도시어부'라는 프로였습니다.

"당신은 낚시 안 좋아하잖아."

"이거 보다 보니 재밌을 것 같아서 이제 좀 해볼까 하고. 당신은 낚시는 싫지?"

"......"

"싫구나..."

그녀는 남편의 말에 코끝이 찡... 해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지난 추억을 꺼내봅니다.

아빠와의 추억을 꺼내보는 수진 ⓒ최선영

아침부터 분주한 아빠의 손놀림을 따라 수진이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분명 심심할 거야.”

“뭐가 심심해. 재미있지.”

혼잣말에 아빠가 대꾸를 해주셨는데 수진이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지 않고 가방에 이것저것 심심하지 않을 놀 것들을 챙겨 넣었습니다.

“짐만 될 텐데...... 책 한 권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아빠가 한마디를 더 건넸지만 수진이는 가방에 더 넣을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빠를 따라 낚시를 간다는 것은 작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긴 시간 낚싯대만 뚫어져라 보고 있어야 한다고 엄마가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뻔한 지루함이 기다리는 곳인 줄 알면서 따라나선 것은, 아빠 따라 낚시 가면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거기다 콜라까지 사주겠다는 솔깃한 제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어디든 딸을 데려가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이 보여서 아빠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아빠와 둘만의 시간은 어디를 가든 어린 수진이를 설레게 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심심할 것 같은 낚시터였어도.

아빠는 징그러운 지렁이를 손으로 만지며 낚시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셨습니다. 수진이의 눈에는 아빠의 설명보다는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더 크게 들어왔습니다.

낚시를 따라갔지만 절대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지렁이 때문이었습니다. 징그럽기는 했지만 꼬물 거리며 살아있는 지렁이가 물고기 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가여웠습니다.

더 슬펐던 것은 지렁이를 먹으려다 잡힌 물고기였습니다. 파득거리는 물고기의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식탁에 올라온 생선의 하얀 살은 냠냠 잘 먹었지만 낚시터에서 만난 물고기의 살아있는 눈을 보고는 도저히 매운탕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끓여주신 정성스러운 음식이었지만 매운탕만큼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 ⓒ최선영

“아빠-”

“응”

“우리 야만인 같아.”

“허허.”

아빠는 그럴듯한 말로 매운탕을 먹어도 되는 이유들을 말씀하셨지만 수진이는 매운탕을 먹지 않았습니다. 낚시는 야만인의 이기적인 놀이 같아 보였습니다. 그때는 낚시의 느낌이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낚시를 따라다닌 것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렁이도 물고기도 불쌍하다며 울먹이는 딸을 위해 잡은 물고기를 대부분 놓아주기도 하셨고, 심심할 것 같다던 딸을 위해 라디오를 들고 가서 물고기들이 시끄러워하거나 말거나 노래를 틀어놓고 목청 높여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매운탕을 먹지 않는 딸을 위해 다른 먹거리를 준비해주셨습니다. 바로 라면! 파 송송 계란 톡! 양파도 듬뿍! 아빠를 도와 파도 송송 썰어보고 양파도 촘촘 다져 넣었습니다.

삐뚤빼뚤 모양은 제각각이 된 야채들이지만 몇 번 더 해보면 잘하겠다는 아빠의 칭찬에 수진이는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아빠 말씀대로 몇 번을 하다 보니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심심할 것 같다며 들고 갔던 가방 속 놀 것들은 아빠 예언대로 짐이 되었습니다. 책 한 권이면 충분했다. 그 책도 어떨 때는 펴볼 시간 없이 조용한 낚시터에서 아빠와 수진은 시끌벅적하게 놀았습니다. 아빠와 함께 하는 낚시는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던 딸이 어느 날, 장애인이 되고 다름을 안고 살게 된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쩌면 아빠가 없는 이 세상에서 아빠만큼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게 된다면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빠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을 다 보여주고,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 어린 수진이는 아빠의 깊은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심심할 것 같은 낚시도 따라나섰습니다.

“그때 먹어보지... 맛있었는데...”

아빠가 아프시고 하얀 병실에 누워 하신 말씀..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울림으로 마음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아빠는 딸에게 그 매운탕을 먹이고 싶으셨나 봅니다.

“아빠 다 나으면 또 가지 뭐. 이번에는 내가 잡아서 맛있게 끓여줄게.”

“네가? 맛있게? 허허, 아빠가 끓여줄게. 그건 내가 더 낫지 싶다.”

“호호, 네.. 먹고 싶었어요. 꼭 끓여줘. 얼른 나아서...”

"그래.. 진작 말하지 먹고 싶었다고.. 꼭 해줄게."

아빠는 수진에게 매운탕을 끓여주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아쉬움을 안고 먼 길을 가셨습니다. 그 걸음이 혹시라도 무겁지나 않았을지... 먹고 싶었다고, 말하지 말걸.. 괜히 아빠 마음만 무겁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빠가 염려하신 것과 달리 수진이는 독신으로 살지 않습니다. 아빠만큼이나 좋은 남자를 만나 수진이가 보고 싶은 세상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남편이 수진의 깊은 마음에 있던 아빠와의 추억을 꺼내보게 했습니다.

"나... 낚시하고 싶었어."

"정말?"

"응~"

"잘 됐네. 같이 가면 되겠다."

그리고 수진은 마음에서 꺼내든 아빠와의 추억을 승진에게 들려주었습니다.승진은 수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따스한 미소를 보냅니다.

"매운탕도 먹고 싶어."

"ㅎㅎ 그런 것도 먹을 줄 알아?"

"아빠랑 낚시 갔을 때 끓여주셨는데 도저히 못 먹겠기에 안 먹었거든... 그런데 냄새는 정말 맛있었어.아빠 아프시고 병원에서 얼른 나아서 매운탕 끓여주겠다고 하셨는데..."

수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립니다.

"맛은 보지 않았지만 냄새는 기억하지?"

"응"

"그 냄새를 찾아보자. 분명 아버님이 끓여주신 그 맛있는 냄새로 끓여주는 곳이 있을 거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수진과 승진 ⓒ최선영

수진은 승진과 함께 낚시를 다니며 그 맛있는 냄새를 찾아다니는 행복한 여행을 합니다.

'도시어부'는 아빠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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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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