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은 어떤 화가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내린다고 노래를 했었지만, 지금 이 세상은 4월인데도 꽃샘추위가 여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자폐인의 날(4월 2일)은 찾아왔다는 것이죠.

올해는 그렇게 떠들썩하게 자폐인의 날을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 직장에 두 번째 출근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죠. (그 사이에 취업을 했습니다.)

일부러 4월 2일의 출근 패션은 캐주얼하게 입고와도 된다는 사무실의 방침을 거꾸로 활용해서 남방, 재킷, 바지를 모두 파란색 계열로 입고 출근했습니다. 사실 지난 제14기 장애청년드림팀 면접 때처럼 파란색 빵모자까지 쓰고 출근하려 했다가 참은 것입니다. 나름대로 자폐인의 날을 기념한 나름대로의 ‘파란 빛 밝히기’ 행사를 한 것입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세계 자폐인의 날이 뭔지도 몰랐던 나머지, 그리고 아직 직장 부서원들이 제 존재에 익숙해지지 않아 눈치를 못 채고 지나갔습니다. 직장 동료들도 세계 자폐인의 날 관련 이야기를 제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자폐인의 날을 기념하여 인도네시아 친구가 올린 페이스북 메시지 ⓒEchi Pramitasari 페이스북 갈무리

그렇지만 지난 제14기 장애청년드림팀 친구들은 눈치를 챘습니다. 아시아-태평양 한국 방문 청년 중 하나였고, 국내캠프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친구가 된 인도네시아 친구 에치(지체장애인입니다.)는 저를 기억해주고 제14기 장애청년드림팀 발대식 사진을 올리며 기억해줬습니다.

끄트머리에 “장지용이 그리워” 라는 문장을 넣었더군요. 아주 고마웠습니다. 먼 곳에서 다른 자폐인을 통해 자폐성장애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 진정 고마웠고, 이것이 장애인 개인 개인이 이루는 국제적인 연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아예 트위터를 길게 쓰면서 자폐인의 날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성인 자폐인 자조모임 estas에서는 회원 2명이 공식 기념식에 대표단(?)으로 참석하였다는 후문입니다.

이렇게 제 주위에서는 약간의 북적북적한 분위기로 그 날이 지나갔지만, 언론들은 세계 자폐인의 날을 의미 없이 보냈습니다. 적당히만 써도 감사하다는데 세계 자폐인의 날을 맞이하여 자폐인의 현실이나 요구사안 그런 것을 다룬 언론 보도는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에 대한 문화일보 인터뷰 기사 딱 하나를 빼고는 ‘아예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파란 불 밝히기를 했다는 뉴스나, 기념식 르포 기사와, 틀에 박히게 보건복지부가 이야기한 것을 받아 적는 수준으로 끝났습니다. 언론들이 세계 자폐인의 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저라도 불러서 인터뷰를 했다면 모를까 말이죠. (저는 에이블뉴스 이외 언론에서 제게 제의해온 저와 자폐성장애에 대한 인터뷰를 환영합니다. 서면 인터뷰도 좋아요.)

그래도 김용직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니 진짜 동감할 수 있었던 내용으로 실렸습니다. 인터뷰 내용 말따마나 자폐성장애인의 고용 확대와 대중적 관심과 인지 확산,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저도 요즘 자폐성장애에 대한 연설을 가면 자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번 세계 자폐인의 날을 맞이한 세상의 분위기를 보면서 올해 4월 20일(장애인의 날)이 어떻게 지나갈 것인지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무관심, 이슈는 많은데(주요 언론 기자 분들, 에이블뉴스 기사 정독하고 장애인 관련 보도하세요!) 언론에서는 다루지도 않고, 피상적으로만 다루거나 할 것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4월 20일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슬픈 사실입니다. 대중들이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하고 놀기에만 정신 팔릴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거든요. 신문들도 토요일에는 신문을 얇게 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섭니다.

유일한 기대는 요즘 토요일 발행 신문의 패턴을 보면 실시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심층보도 위주로 신문을 낸다는 사실을 봤을 때, 탈시설 논쟁 같은 이슈를 심층보도하면 울림도 대단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한겨레에서 탈시설 생활자의 삶을 다룬 르포를 창의적으로 심층보도한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언론들은 관심이 없어서 보도를 안 하는 것이지, 역량이 없어서가 아닐 것은 확실합니다.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쓴다면 잘 쓸 수 있기 때문이죠.

솔직히 무관심이라는 말을 써야했던 이유도 하나 더 있습니다. 공식 명칭을 다룰 때 ‘세계 자폐인의 날’이라는 공식 번역 명칭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직역해서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라고 번역한 언론들이 많았던 것이 슬펐던 것입니다.

요즘 저는 ‘자폐증’이라는 단어를 제 ‘인식사전’에서 지우거나, ‘자폐성장애를 의학적으로만, 질병인 양 생각한 개념’이라고 의미를 바꿨습니다. 저는 이제 영어 Autism을 무조건 ‘자폐성장애’라고만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죠.

올해 세계 자폐인의 날은 제게 씁쓸하게 지나갔습니다. 내 동지들은 잊지 않고 ‘자폐성장애인인 장지용이 생각난다’ 같은 연대를 하는 모습이 있는 동안, 정작 확성기가 돼야 할 언론들은 사실상의 침묵으로 끝났다는 것이 말이죠. 그래서 씁쓸하게 지나간 것입니다. 내년 세계 자폐인의 날은 조금 시끌벅적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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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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