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정착한지 일년이 되었다. 그 사이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작년 12월부터 샌안토니오주가 속한 베어 카운티 지적발달장애부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이다. 광활한 대지에 끝도 없이 펼쳐진 이 주의 면적 자체만 대한민국의 무려 7배라고 한다. 중부에서 가장 큰 주이다 보니 미국의 10대 대도시 중 4곳인 샌안토니오, 오스틴, 휴스톤, 달라스가 모두 텍사스 주안에 있다.

필자가 작년부터 살고 있는 샌안토니오시의 지방 정부의 이름이 베어 카운티인데 운 좋게도 필자는 카운티 정부의 지적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사로 운 좋게 취업에 성공을 하였다.

텍사스주에는 지적발달장애인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이 프로그램중 가장 종합적이고 막대한 펀드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이름이 Home and Community Service Program(가정및 공동체 프로그램), 줄여서 HCS 프로그램이라고 불린다.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이 HCS프로그램은 연방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모든 주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주정부의 행정하에 진행된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시설로 가던 장애인들을 가정과 공동체안에서 일반인과 동등한 삶의 질을 가지고 생활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의 텍사스주 지역 담당자로 벌써 네달째 일을 하고 있다.

HCS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수혜자 개인에게 거의 무제한의 예산이 집행된다. 주거 생활, 학교, 여가활동, 취업, 건강에 걸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로그램 수혜자가 되면 필자와 같은 지역 담당자가 한 명씩 정해지고 수혜자의 필요에 따라 주거 환경, 주간 보호 시설, 직업 교육, 재활 서비스, 주말 여가 서비스 등등에 필요한 서비스의 종류와 예산을 짜고 승인을 내고 각각 서비스를 제공할 프로바이더를 정해 예산을 진행한다.

무제한에 가까운 예산의 규모가 어느 정도냐 하면, 필자가 맡은 수혜자 많은 수가 주거 보조, 간호 보조, 주간 보호 프로그램, 재활 서비스 정도 등을 받는데 이런 경우 개인당 7~8천만원 까지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런 다양한 서비스 중에서 필자의 가장 관심을 끈것은 바로 주거 환경 제공에 대한 내용이였다. 지적발달장애인들은 독립성 정도에 따라 다양한 주거 환경에 거주한다. 독립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한 장애인들은 정부 보조를 받는 개인의 집에 거주하고 대신 생활 도우미의 예산을 짜고 이들을 보내준다.

만약 독립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의 수준이면 소위 말하는 위탁 가정(Foster care/Host Home)에서 지내거나 그룹홈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룹홈도 거주자의 독립성 유무에 따라 24시간 직원이 상주하는 곳이 있고 낮에만 직원이 거주하고 밤에는 퇴근하는 조금 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이 위탁 가정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탁 가정을 제공하는 사람이 대부분 장애인의 부모라는 사실이다. 스스로 독립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의 경우는 그 부양의 책임이 당연히 국가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녀를 데리고 사는 부모는 하지 않아도 되는 부양의 책임을 국가를 대신해서 맡은 것이니 국가가 정당한 거주 비용과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정부에 장애 자녀를 맡긴 것이 아니라 역으로 부양의 일차 책임이 있는 정부가 장애인을 그들의 부모에게 맡김으로 ‘위탁’의 형태가 되고 따라서 정부가 부양비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부모가 제공하는 위탁 가정제의 기본 원칙이다.

부모의 경제력 유무가 위탁 가정으로 부양비를 받는데 미치는 영향은 없다. 부모의 재산이나 소득 여부는 장애인이 정부 책임제로 들어가는데 아무런 고려 조건이 되지 않는다. 거주 환경이 장애인이 지내기에 적절하기만 하다면 대부분 부모는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자신의 장애 아이를 돌보면서 장애 정도에 따라 대략 한 달에 2천불(한화 2백만원)에서 많게는 4천불(한화 4백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

대신 이 부모는 위탁 가정의 제공자로 주정부가 정한 안전 기준을 맞춰야 하고 안전 교육, 심폐소생술과 응급 대비 요령 등의 자격증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세달에 한번 필자와 같은 카운티 직원의 방문 감찰을 받아야 한다.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된 장애인들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 부모들에 대한 만족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HCS프로그램은 주거 환경 이외에도 생활 전반에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천국같은 프로그램의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 장애인들은 10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개개인에게 제공되는 예산이 크다 보니 프로그램 전체 예산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텍사스에 사는 대부분 지적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아이가 아주 어린 나이, 주로 장애 진단을 받은 순간에 이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제출한다.

미국은 보편 복지제를 택한 나라가 아니다. 때문에 번호표를 들고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기다리는 장애인들에게(물론 대기 중인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현실은 차갑다. 대신에 선택복지의 선택된 자들에게 아낌없는 펀드가 제공된다. 선택 복지의 양면인 셈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필자의 관점에서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미국의 복지가 결코 이상적인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오랜 투쟁의 결과 덕에 장애인 복지 제도만큼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장애인의 부양의 일차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원칙 하나는 철저하게 지키내고 있다는 점에서 텍사스 정부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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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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