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형성부전증(Osteogenesis imperfecta)이 있다. 골형성부전증은 특별한 원인 없이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이다.

쉽게 말해 뼈가 쉽게 부러지거나 휘어지는 병이다. 어릴 때부터 잦은 골절과 변형을 경험했다. 덕분에 내 키는 아주 작고, 여러 곳이 변형되어 있다.

골형성부전증이 있는 사람들은 보통 어릴 때부터 병원에 밥 먹듯 들락거린다. 뼈가 골절되어서도 가지만, 휘어진 뼈를 교정하기 위한 수술을 받으러도 간다.

나 또한 유아 때 병원에 오랜 시간 입원하고 대수술을 수차례 경험했다.

하지만 수술로 뼈를 펴도 성장하며 또 휘어진다. 그래서 골형성부전증이 있는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병원에 출입하고 입원하길 거듭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6~7세 무렵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당시 의사는 어린 내가 전신마취를 거듭하며 계속 수술을 받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 뒤부터 우리 가족은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이사를 해서 쭉 살았다. 이후로도 골절이 계속 되었지만 간단히 깁스만 하고 뼈가 붙기를 기다렸다. 수술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뼈가 골절되고 다시 회복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부모님께선 그때 나를 계속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하신다. 사춘기가 지나며 척추측만증이 심해져 폐 엑스레이를 찍어도 폐 상태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곡만이 심해졌고, 다리는 어린아이 때 모습 그대로 남아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걷지 못해 팔로 바닥을 짚고 다니거나 기어 다닌 덕에 팔은 길지만 관절과 뼈에 변형도 왔다. 그래서 부모님은 때때로 나를 보며 몹시 미안해하신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 않음으로 인해 또래와 함께 성장하고 평범한 교육여건 속에 함께 경쟁하며 자랄 수 있었으므로 나는 진심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원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어쨌든 그런 연유로 내 몸은 남에게 보이기에 조금 민망하고 조심스럽다. 딱히 내 몸이 이런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기분이라 그렇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치마와 반바지는 일절 입지 못했고, 더운 여름에도 긴바지만 입고 다녔다. 종일 앉아 있어야 해서 무척 덥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한 번씩 내 변형된 다리를 만지며 “외계인”이라고 했던 경험 이후로 더욱 그렇게 되었다. 더운 여름에 물놀이를 가서도 긴바지를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던 나에게, 내 몸을 처음으로 드러내야 했던 때가 있었다. 20대 청년의 나이가 되고 대학에 입학해 자립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가족 외에는 내 몸을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나는 치밀하게 내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젠 삶을 위해 내 몸을 누군가에게 드러내야 했다. 때문에 나에겐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

내 첫 활동보조사는 같은 대학에서 재학 중인 룸메이트였다. 내 몸을 드러내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거나, 불쌍하게 여길까 봐 초조한 마음이 들었지만 용기를 냈다.

차분한 목소리로 내 몸 이곳 저곳을 설명했다. 룸메이트는 그 어떤 불쾌한 표정이나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활동보조를 해주었다.

그 다음은 같은 과 동기들이었다. 활동보조사인 룸메이트가 집을 비우면 다른 친구들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해야만 해서 선뜻 용기를 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내 몸에 대해 설명했다. 내 친구들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그 일은 서로 더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언젠가 내 오랜 룸메이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내 몸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룸메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어. 그치만 이젠 뭐 아무 생각도 안 들어. 그냥 언니인가보다 하는 거지.”

지금은 내 절친한 대학 동기들 모두가 내 몸의 상태를 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그래서 함께 여행을 가서도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도움을 받는다. 나의 다른 점을 조심스레,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릴 때 당한 트라우마와 같은 경험은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었지만, 성인이 되고 이해를 받자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기에, 그리고 세상에 내보이기에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예전엔 변형된 몸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조심했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아직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고, 치마를 입고 다닐 정도의 용기는 없지만 언젠가는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몇년 뒤 더 변해 있을 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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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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