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위, 아무렇게나 주정차 된 차량과 훼손된 보도블록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통행과 안전을 방해하고 있다. ⓒ이옥제

‘아휴... 이걸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두면 위험할 텐데...’

몇 달 전부터 집 근처 거리를 지날 때면 영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여기저기 패이고 찢겨 평평한 인도 위를 방해하는 날선 보도블록들.

더구나 대로변 상가 밀집지역이라는 주변 특성상, 식당, 카페 등. 그곳에 입점 된 여러 가게들을 이용하려는 많은 차량들이 인도를 범접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 터라 혹 그곳을 지나게 될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의 안위가 늘 염려되곤 했었는데

설상가상,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점점 훼손의 범위가 넓어지는 보도블록들이 한 축을 더한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별도의 주차 공간도 여의치 않은 데다 이곳의 소상공인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게지...’

하지만 막상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니었던지라 마음 한 켠의 불편을 착한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달래고 삯이며 그곳을 오갔건만.

급기야 뇌병변 장애를 가진 짝꿍강사가 그곳에 걸려 두어 차례 넘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더는 미루고 지켜볼 수만은 없어 사진을 찍어 120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민원요청을 하였다.

민원요청 닷새 후, 말끔하게 복원된 인도의 사진과 함께 결과를 알려주던 서울시 응답소, 120 다산콜센터의 처리 완료 문자메시지. ⓒ이옥제

그리고 닷새 후. 말끔하게 포장된 보도블록들의 사진과 함께 받게 된 서울시의 민원처리 완료 문자에 “역시 서울시야!”

약간의 뿌듯함이 담긴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같은 위치의 인도 한 부분에서 비장애 지인이 파손된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져 심각한 골절 수술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야기를 듣고 다시 찾아가 사고의 지점을 유심히 살펴보니 글쎄, 앞서 시정을 요청한 곳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인도의 30m 구간 정도가 파이고 갈라져 차라리 비포장 흙길이 더 안전할 것 같은 상황을 보게 되었다.

‘비장애인도 이정도인데 혹 장애인이 지나다 사고라도 났으면...’

찰나의 아찔함에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해당 인도의 전 구간에 대한 시정 요구를 생각하고 있던 중, 누르는 셔터 소리와 함께 옆을 지키고 있던 다른 지인들의 의아함이 더해진다.

“그 사진 왜 찍는 거야?”

지인들의 물음에 앞선 상황을 설명하며 조금 더 추가적인 시정요구를 하려 한다는 나의 대답에 돌아오는 목소리들.

“하지 마. 진상 짓이야!”

“그런 거 잘못 했다간 진상으로 찍혀.”

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시민이 시민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공장소들에 대한 불편을 요청하고, 그 개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진상으로 찍힐 일이라니.

다소 황당한 주변의 반응에 되려 당황함을 넘어 순간적인 배신감과 함께 두려움까지 엄습한다.

나 아니면 돼, 남의 일에 나서지 마라, 침묵은 금이다, 문밖에 나가면 말조심해라…….

100년 전, 50년 전, 아니 불과 30여 년 전까지도 우리네 어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워온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다. 불의한 일에 침묵하는 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일이라고.

아직도 50년 전 그때, 그 삶의 형태를 유지하는 그냥 ‘착한’ 시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 이 시대 속에서 때로 불의한 일에 맞서기도 하는 현재를 살며 모두를 위한 삶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좋은’ 시민이 될 것인가.

시민을 위한 제도를 통해 시민에 의한 진정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나는 좋은 시민이고 싶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옥제 칼럼리스트
현재 장애인권강사 및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증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 교육강사로서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종사자 교육, 장애인 당사자교육 등. 다양한 교육현장을 찾아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평범한 주부의 삶에서 장애인권강사라는 직함을 갖게 된 입문기는 물론, 그저 평범한 삶을 위해 ‘치열함’을 나타내야 하는 우리네 현실 속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장애의 유무를 떠나 누구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