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전의 내 삶을 사랑했어요. 난 이 삶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오토바이 사고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주인공 ‘윌’의 대사다. 그는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한다.

영화 '미 비포 유' 포스터 ⓒ네이버 영화

'미 비포 유’를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로 개봉되어서 두 번째로 접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집은 책이, 휠체어 탄 주인공의 이야기였기에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하지만 점점 읽을수록 돌덩이가 얹은 듯한 답답한 기분으로 마지막장을 덮었다. 나는 휠체어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또 사지마비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써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미 비포 유’가 장애를 그려내는 방식

‘미 비포 유’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자 꿈이 없는 여자 주인공 ‘루이자’. 그리고 잘 나가는 사업가에서 하루 아침에 사고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윌’에 대한 이야기다.

윌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로 한 6개월 동안, 간병인으로 고용한 루이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영화 '미 비포 유' 중에서 ⓒ네이버 영화

사고가 일어난지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꿈 속에서 두 발로 서핑을 한다. 이전의 자기 모습을 보며 그리워하며 세상과 마음을 닫은 채 집안에서만 살아간다.

다시 파리로 떠나자는 루이자에게 윌은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다시 가면 자리(카페)를 잡느라 쩔쩔 메고,

택시 승차거부를 당하고,

휠체어 충전하느라 애쓰겠죠.”

이 영화가 주는 불편한 지점들이 곳곳에 있다. "휠체어 신세가 아니였으면 내 가슴에 관심 없었을 거면서, 늘씬한 금발 언니를 보기 바빴을 걸요."라고 말하는 루이자.

윌은 사고가 난 이후의 모습을, 즉 휠체어 탄 자신의 모습을 '이 꼴'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한 윌의 하루 일과는 그저 ‘하염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한다.

이 영화가 장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처럼 장애인이 된 이후의 삶을 비참하게 생각하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장애인이 되기 이전에는 행복했지만, 장애인이 된 이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만 그려낸다. 또한 원작 소설에 비해 많은 감정변화와 내용들이 함축되어 더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럼 관객이 윌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어떨까? 관객 리뷰 중에 '영화를 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라는 글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윌’의 삶으로부터 비장애인 관객들은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다.

왜 장애가‘사지 멀쩡한’ 자신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는 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래서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며,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중증 장애인들의 삶을 너무나 쉽게 ‘허송세월’, '이 꼴‘, '비참한' 이라는 표현으로 쉽게 뱉어 버린다. 이를 시청하는 순간 나도 ’내 삶이 과연 무가치한가‘ 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 = 불행‘이라는 프레임을 더욱 강화 시킨다.

존엄사의 설득력을 얻기 위해 선택한 '장애'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준비하면서 나타난 사랑’.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문구이자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문구다. 언뜻 보면 장애인이 존엄사를 스스로 선택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존중’하는 영화로 보여진다.

하지만 영화 내내 루이자와의 사랑으로 인해 그의‘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지, 없는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관객들과 줄다리기를 한다. 이 영화는 정말 사지마비 장애인의 존엄사를 그리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적인 요소의 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존엄사’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그려내면서 설득력을 얻기 위해 ‘장애'를 선택 했다. 더욱이 씁쓸한 것은 ‘그게 관객들한테 설득되고 먹힌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참을 수 없는 몸의 통증’만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전의 인기 많고 잘 나가던 비장애인 ‘윌'로 살 수 없음이 더 괴롭기 때문이다. 이제 예전처럼 파리 노천 카페에 앉아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그가 아니기에.

'사고로 인한 자신의 삶은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무능력하다는 존재'라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함으로써, 장애인이라면 존엄사를 정당화하게 만든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주인공이 비장애인이었다면 존엄사라는 선택이 정당화 되었을까?’장애는 영화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극적인 요소’로서 소비됐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시련 속에도 삶의 끈을 놓치 않고 살아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의 존엄사는 설득력을 얻는다.

왜 장애인이라면 존엄사의 대상에서 쉽게 합리화되고 정당화되는가? 장애인의 삶을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함’, ‘무가치함’, ‘매력적이지 않은 몸’이라 치부해 버리는 것인가.

영화 '미 비포 유' 중에서 ⓒ네이버 영화

무뎌지지 않기

’미 비 포유‘가 어느 정도 던져주는 의미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거운 주제에도 따스한 감성과 재치를 잃지 않았고 서로를 통해 인생의 변화도 맞게 되었다.

또한 사지마비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 영화를 그렸다는 점, 그리고 존엄사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로맨스를 그렸다고 해서, 장애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작품만은 아닐 것이다. 장애를 그려내는 방식과 관객들에게 소비되는 방식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고 눈물 흘리고 감동 받았다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떠한 감동도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존엄사의 설득력을 얻는 '장애'가 내 삶 전체를 무가치화 해버리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에는 항상 '비참한', '불행한'이라는 수식어가 끊이지 않고 따라온다.

왜 이런 수식어가 항상 장애인에게 그려지고, 또 정당화 되는지 무뎌지지 않고, 문제 의식을 가지고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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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칼럼리스트
전 장애인권운동 활동가이며, 지금은 장애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장애인의 매력적인 삶을 위해 기존에 틀에 물음표를 던지고 새로운 것들에 시도하려고 한다. 장애인이자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여행, 미디어, 일상을 나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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