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주차구역을 침범해 주차된 차량. ⓒ정민권

"선생님, 잠깐만요!"

아파트 입구 앞 장애인주차구역에 이제 막 주차를 끝내고 차에서 내리는 주민을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자신을 불러 세운 나를 다소 불쾌한 듯 쳐다보며 항의하듯 말을 건넨다.

"나도 장애인 차량이에요. 저 표시 안 보여요?"

"아, 네. 근데 보행이 불편하지 않으시면 저한테 양보해 주시겠어요? 제가 보행이 좀 불편해서요."

그는 비어있는 주차 칸이 여러 곳 있었음에도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려 했다.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 아니었음에도 장애인 차량 주차 스티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당하게 장애인 주차구역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고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나를 위아래 훑어보더니 뒤에 실린 휠체어를 보고서야 투덜거리며 차를 빼 주었다.

그리고 나서도 몇 차례 주차되어 있는 그에게 양보를 부탁하는 전화를 해야 했고 그때마다 그는 얼굴에 불쾌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주차장에서 통나무 넘어가듯 넘어지는 나를 본 후에야 그는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지 않고 있다.

또 한번은 집 인근 수영장에서 아들을 픽업하기 위해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고 기다리다가 주차장을 빙빙도는 차를 발견했다. 두바퀴를 돌더니 결국 주차구역 안에 넣지 않고 앞에 주차를 해놓고 부리나케 뛰어 들어간다.

주차 공간이 없어 빙빙 돌며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며 얼마나 짜증을 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삼삼오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오며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비워놓는 게 아깝지 않아?"라며 서로 장애인주차구역의 비효율적이라며 하소연을 한다.

과연 장애인주차구역은 놀고 있는 '아까운' 잉여의 공간일까?

휠체어를 싣고 내려야 하므로 다른 주차구역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차량이 오가는 주차장이니 안전을 위해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장애인 주처 구역이 있는 것이다. 또한 소방차량 주차공간처럼 언제고 필요할지 모르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에 비워져 있다고 놀고 있는 공간은 아니다.

장애인주차구역은 장애인의 안전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며, 장애인 주차 스티커가 있다고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반드시 보행상 장애가 있는 당사자가 운전 혹은 탑승을 해야만 한다. 이런 사실은 장애인 차량 스티커를 발부하는 관계 기관에서 계도가 꼭 있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퇴근시간과 맞물려 버스를 타려던 휠체어 사용 장애인(전국장애인 차별 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활동지원사에게 버스기사는 "이 시간에 장애인이 왜 버스를 타고 난리야"라고 했고 이에 뿔이 난 장애인은 휠체어로 버스 앞을 가로막으며 사과를 요구했다.

버스 기사는 사과는커녕 경적을 울리다 결국 경찰을 불렀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버스기사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버스 기사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고 버텼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승객들의 불만도 높아졌고 그 불만은 장애인에게 집중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뉴스 기사로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어쩌면 이리도 나아지지 않는지 참 많이 씁쓸했다. 승객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장애인에게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버스를 탈 수 없는 시스템과 휠체어를 탔지만 분명 자신의 승객인 장애인에게 막말을 한 버스 기사에게 사과를 하라고 승객들은 입을 모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장애인이 되려 하는 일은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주차구역이나 여러 감면 혜택 등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는 스스럼이나 부끄러움 하나 없이 장애인 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라치면 장애인들이 문제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너무 얄팍한 이기주의 아닌가.

휠체어 사용 장애인 역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장애인이 있다. 그들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콜택시만 이용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저상버스나 지하철 등 일명 대중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이런 당연한 권리가 비주류인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심지어 인격적 모욕을 받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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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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