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에이블뉴스DB

1월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데 카톡 알림이 다급하게 울려댔다. 화장을 하던 참이라 내용만 슬쩍 보았는데 먼저 출근한 룸메이트였다.

“오늘 기차표 예매날이었어!”

“다 실패했어 ㅠㅠ”

“언니는 어떡해?”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아! 오늘이었구나. 어떡하지. 늦었지만 그래도 예매는 해야하니까 코레일 예매사이트에 접속했다. 표는 이미 모두 매진이었다. 애초에 몇자리 되지 않는 전동휠체어석조차도.

매년 명절이면 연휴를 전후로 휴가를 이틀 정도, 적어도 하루 정도는 매번 붙여 쓰곤 했다. 사람이 많은 날짜를 피해야 안전하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향이 멀기 때문에 한번 내려가면 푹 쉬면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거나 고향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일정상 그러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더더욱 명절 연휴의 기차표가 절실했다. 매번 잊지 않고 새벽같이 일어나 예매했었는데, 이번엔 대체 무슨 정신이었는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이후 이틀, 사흘 간 계속 확인해봤지만 전동휠체어석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좌절스러웠다.

부모님께 전화해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그럼 어쩌냐고 당황스러워하셨다. 자동차로 왕복으로 8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달려 나를 데리러 오시겠다 하셨다. 명절이라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고민해보자고 하셨다.

그러더니 곧 오히려 즐거운 목소리로 “그럼 이번엔 우리가 가서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면 되겠다!”하셨다. 부모님이 오시는 거야 상관 없지만 명절에 오히려 부모님 고생시키는 자식이라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리고 나는 고향에 가는게 좋다. 푹 쉬며 집밥도 먹고 부모님과 쇼핑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친구네 집에 가서 오래오래 수다를 떨 수 있으니까. 그렇게 며칠 쉬며 기분전환을 하면 에너지가 쌓여 일상으로 돌아와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하지만 만약 서울에서 명절을 보낸다면 문제가 생긴다. 좁은 집에서 부모님과 나, 즉 세명이 붙어 지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트러블이 생기는 게 뻔하다. 평소 부모님과 잘 지내곤 있지만 좁은 공간에 오랜 시간 붙어 있는 것과는 얘기가 다르다.

물리적으로 갇혀 있으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길어야 이틀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나와서 사는 거니까. 머리가 크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사는 게 가족 모두의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게 내 지론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가족에 한해서 그렇다.)

그리고,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절대 가만히 쉬지 못하실 것이다. 평소 아무리 청소를 해도 손이 닿지 않은 구석구석의 먼지까지 다 찾아내서 쓸고 닦으실 게 뻔하다.

그리고 내가 욕심으로 사재낀 다량의 책과 장식품(이라 쓰고 예쁜 쓰레기라 읽는다.)을 보시면 좁은 집에 그만 좀 사재끼라고 잔소리가 나오지 않을리가 없다.

휴일임에도 늦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먹는 음식마저도 부실해 마음이 쓰일 것이다. 평소 부모님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상황이 이러면 트러블이 생겨 결국 섭섭함만 쌓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방법을 고민하며 답답하던 차, 며칠 후 혹시나 하고 코레일 예매사이트를 다시 접속했다. 세상에나. 전동휠체어석이 모두 오픈되어 있었다! 세상에, 무슨일이지? 휠체어를 타는 절친한 친구와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다 값비싼 비행기까지 고려하던 차였는데, 예매버튼이 활성화되어 있는 예매사이트 화면을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재빠르게 예매를 하고 결제까지 마친 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장애인인 룸메이트는 끝내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버스를 예매했다고 했다. 기차표를 구했단 이야기를 했더니 몹시 부러워했지만, 오히려 나는 기차의 대안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룸메이트가 더 부럽다. 이럴 때, 버스라도 탈 수 있다면 더 비싸고 번거로운 비행기를 고려할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최근 시외버스를 둘러싼 법적 논의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더 쉽게 갈 수 있게 될줄 알고 기대에 부풀어있었는데, 발목을 붙잡히는 느낌이었다.

언제쯤 우리나라도 장애인 이동권 이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누구든 그런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데. 장애인의 시선에서 사회를 꾸려가면 오히려 더 안전하고 너그러운 분위기가 형성될텐데. 걸을 수 없어도 이동에 제약이 없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격차가 많은 부분에서 해소될텐데. 참 아쉽다.

나는 다가올 추석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연휴에도 몇석 되지도 않는 열차 티켓과의 치열한 싸움을 벗어나지 못하겠지. 버스도 탈 수 없고 운전조차 자유롭게 하기 힘든 나 같은 사람에게 앞으로 명절이란 긴 휴가가 아니라 어쩌면 해결해야할 큰 숙제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숙제를 해결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과 씁쓸함으로 뒤덮힌 긴 기간이 될 뿐일 것이다. 아무 힘이 없는 나는, 부디 조금이라도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해가길 바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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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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