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인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다. 재활난민, 사회적 입원자. 경단장(경력단절장애인), 백조인간 등..

재활난민은 척수장애인들의 평균 입원기간인 30개월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6개정도의 병원을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닌다. 이러면서 병원생활이 적응이 되고 오히려 지역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병원에 안착하는 사회적 입원자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 20~40대에 사회활동을 하다가 척수장애인이 되는데 장애 이전의 학력과 경력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활동이 막히는 현상이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경단녀와 같아서 경단장(경력단절장애인)이라고도 한다.

척수장애인이 중증의 장애인이지만 사회활동을 못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다. 80% 이상이 고졸 이상의 학력이 있고 그중 34%가 학사 이상의 고학력이지만 사고 이후 70% 이상이 무직이 되고 만다.(2015년 척수장애인실태조사)

문제는 이런 현상은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도장애인인 척수장애인이 장애 이전의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애수용이다.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중증의 장애인이고,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당당히 사회 속으로 가도록 하는 훈련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병원에서는 의료적 재활에만 함몰되어 있어 물리치료와 공간 내 작업치료에만 몰두하고 걸어서 나갈 것이라는 불가능한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내 장애를 수용하고 휠체어를 타고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훈련과정은 적다. 대인과의 기피증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교외프로그램도 병원 밖이라는 책임소재로 매우 소극적이다.

척수장애인 동료와의 지지도 중요한데 외부 기관에서 병원을 출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척수환자의 치료는 의료전문가의 주도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우월감이 있다고 본다.

중도장애인인 척수장애인은 많이 다르다. 의료적 재활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직업적 재활이 균형을 맞아야 한다. 여기에 가족의 지지를 위한 가족훈련도 필요하다. 가족의 장애수용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종합적인 지원이 있어야 척수장애인이 사회를 살아나가는데 기본적인 도움이 된다. 또한 아무리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아도 지역사회로 바로 나가서 적응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위험을 방어하는 훈련이 없다. 가능하면 실수하지 않게 안전하게만 가르친다.

이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해도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사회는 척수장애인에게는 수많은 위험요인으로 득시글하다. 이 위험요인과 당당히 맞닥트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처세술이 더 필요하다. 그 처세술은 위험을 싫어하는 병원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가 없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발간한 일상홈 모집공고 포스터 중 일부. ⓒ이찬우

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이런 훈련을 위해 퇴원 이후에 바로 입주할 수 있는 일상홈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전문훈련을 받은 척수장애인은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매우 저돌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근로활동도 월등히 많이 한다.

척수장애인의 재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다. 병원에서부터 지역사회 나가는 초기재활의 전 과정이 매우 유기적으로 잘 연결이 되어야 한다. 이를 전환재활이라고 한다. 병원에 있는 그 긴 시간 동안 그 누구도 퇴원 후의 직업생활에 대한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져서 일하지 않고 사는 방법에 골몰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척수장애인들이 많다. 기초생활수급을 비하하는 의도는 아니다 이 또한 국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진입을 예방하기 위해서 초기 재활에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

사회복귀 관련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병원 내 수가도 지원하고, 민간에서 하는 전환재활프로그램에도 예산과 인력을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지역사회로 연착륙을 하기 위해 주택개선에도 예산이 필요하고 병원입원에서부터 지역으로 나갈 준비를 하도록 촘촘히 지원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오히려 정부의 예산을 절감한다. 예를 들어 필자는 올해 31년째 장애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금 내는 장애인이다. 만일 필자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면 정부는 9억원의 직간접적인 예산을 지원했을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생계지원, 의료지원, 교육비원, 주택지원 등이 가치는 250~300만원 정도라는 정설이 있다. 월 250만원이라고 하면 1년에 3천만원, 10년이면 3억 원, 30년이면 9억 원이다. 그러나 필자는 9억을 절감했음은 물론 오히려 세금까지 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부에게 이익인지는 자명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척수장애인과 같은 중도장애인들의 초기 재활에 너무 인색하지 말라는 것이다. 초기 전환재활에 1인당 5천만원을 지원한다해도 가성비가 좋은 투자일 것이다.

척수장애인들은 세금 내는 장애인이 되고 싶다. 과감히 초기재활에 집중하여 척수장애인과 같은 숙련된 인력을 사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어느 장애유형보다 가성비가 높은 투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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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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